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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음. ‘인생이 예술’이라는 말은 인간의 삶은 예술과 같다는 의미. 왜 인생을 과학과 같지 않고 예술과 같다고 하는가?과학과 예술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 누구나 모두 USB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USB가 나오기 전에는 플로피 디스켓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USB가 나온 이후 지금은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21세기의 최신의 팝송을 듣지만 아직도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또 고흐의 그림을 즐겨 봅니다. 과학은 더 나은 세계를 (the better world)추구합니다. 더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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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7.03.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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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프티(Philippe Petit, 프)는 1974년 8월 7일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의 쌍둥이 타워를 외줄을 이용하여 건넌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두 건물 사이에 연결된 줄을 긴 장대 하나를 의지하여 건넜다. 사람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 장면을 보았고 성공했을 때 환호했다. 그 후 그는 세계의 고층 빌딩들에서 외줄을 타고 건넜다. 그가 허공에서 외줄을 타고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긴 장대 덕이다. 그는 장대를 이용하여 허공속 외줄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았다. 줄타기는 균형의 힘이 극대화되는 현장이다.신앙에도 균형이 필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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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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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할 때, 흔히 받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믿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칠 때에도 한번 쯤은 받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안보여요. 그런데 어떻게 믿을 수 있지요?” 이런 반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첫째,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겠다’는 주장은 사실 일상생활의 터전이 되는 물리적 세계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과 같다. 실제로 우리 눈앞에 보이는 탁자마저도 그 겉모습만 볼 뿐, 탁자에 관련된 전체적인 사항(뒷모습과 구성요소)을 동시에 볼 수 없다. 사람은 꼭 본 것만을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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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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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과학과 기술, 물질적인 면에서 진보를 이루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점점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유럽 대학생의 25%, 미국 대학생의 60%가 ‘내면의 공허’ 또는 ‘실존적 공허’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생의 절반정도도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으며, 10명중에 3명은 자살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 미래의 희망을 잃고, 게임중독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드는 청소년들이 늘어가는 수치를 감안한다면, ‘불안의 시대’로 불리웠던 20세기를 넘어서서, 21세기는 ‘우울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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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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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종교간 통합과 상호존중을 말하는 종교 다원주의 시대이다. 세계인구의 비기독교인 비율은 67%, 우리나라의 경우는 약 80%에 이른다. 2012년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한국의 개신교인들의 의식변화가 심상치 않다. 한국개신교들 중에서 약 30%는 종교다원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궁합, 풍수지리, 윤회설을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종교다원주의는 “장님과 코끼리”와 “등산로”의 비유를 통해서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는 같은 신적인 존재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가령, 코끼리의 코를 만진 장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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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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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신자”란 성경을 전혀 읽지 않아 수북하게 먼지를 교회에 올 때마다 톡톡쳐서 먼지를 털어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은어이다. 종교개혁 이후 라틴어로 강론되던 성경은 자국어로 읽혀질 수 있게 되었다. 인쇄기술이 발달한 이래로 누구나 성경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청년들이 너무 많다.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뚜렷하게 오점으로 남는다. 지금도 이슬람교도들은 서방세계에 대한 태러활동의 정당성의 역사적 근거로 십자군 전쟁을 인식한다. 반면에 일부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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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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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존재하든지 말든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라고 반문한다. 이런 반문은 이 문제가 개인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하기 마련이다. 장 폴 샤르트르(Jean Paul Sartre) 같은 무신론적인 사상가들도 하나님의 존재 여부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가능성을 인정한다.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도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궁구한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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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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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을 가진 공동체이다. 매년 제법 적지 않는 청년들이 한동의 비전을 따라 입학하기도 하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18세기의 영국은 노예무역, 상류층의 타락, 대중의 빈곤, 범죄증가와 알콜 중독이라는 총체적인 위기의 시대였다. 영국이 1773년부터 약 10년동안 공급한 노예는 30만명이 넘었고, 15만명 정도는 운송 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당시 국가수입의 1/3은 노예무역을 통한 탓에, 대부분의 의원들이 노예제도를 지지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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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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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시14:1).” 최근에 무신론자들의 비율이 급증하고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현상의 이면엔, 역사 이래 가장 효과적으로 활동하는 무신론자들이 있다. 가령,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샘 해리스(Sam Harris),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등은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기독교 신앙을 조롱한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해리스는 『도덕의 풍경』은 모두 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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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1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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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어,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군인 일천 명을 죽인 삼손은 슈퍼맨에 가까울 정도의 놀라운 힘을 받은 사람이다. 또 솔로몬은 전무후무하게 탁월한 지혜를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의 일대기를 관찰하면 의미 있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부여된 특별한 능력이 오히려 그들을 망쳤다는 것이다. 삼손은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겸손한 모습이 한 번도 없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없고, 자기의 삶을 조심하는 것도 없다. 모든 이야기가 자신이 좋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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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6.06.0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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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필자가 캐나다에서 공부하며 사역할 때 한 청년이 물었다. “전도사님의 이십 대는 어땠어요?” 당시는 30대 중반이었다. 그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 이십 대는 세 가지 감사가 있었다. 한 가지는 좋은 믿음의 선배들은 만난 것이다. 두 번째는 좋은 책들이다.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거나, 혹은 선배들이 권유한 책이 추천하는 또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꼬리물기 방식으로 알게 된 것들이다. 세 번째는 좋은 공동체이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이 있는 공동체였다.” 시간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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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6.05.1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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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버스 타는 것을 좋아했다. 어쩔 수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단함으로 자고 있는 사람, 재잘거리면서 친구와 이야기하는 사람들, 멍하니 차창 밖의 간판을 읽는 사람,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 등등. 저마다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구체적 삶의 이야기는 모르지만, 여러 모양의 삶을 관찰할 수 있다. 새벽이나 밤에 타는 버스에는 삶의 고단함과 피곤이 묻어 있고, 낮에 타는 버스는 삶의 분주함이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필자 나름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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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6.05.0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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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필자가 맡고 있는 공동체에서 어떤 분을 모셔서 삶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MIT에서 공부시켜주겠다는 제안이 있었음에도 당시 근무하던 직장에서 사람들을 전도하고 양육하는 일 때문에 거절했다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우리 공동체 사람들에게 만일 그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겠냐고 물어보았다. 대부분 MIT에 갔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 필자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은혜로 그곳에 가서 공부해 지금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귀한 하나님의 동행으로 감사하며 말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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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6.04.13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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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편을 읽고 있다. 최근 시편 31을 읽다가 시선이 머물렀고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적이 있다. 필자가 신병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진 않은 때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특별히 선임병들과의 관계는 많이 스트레스를 받게 했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그런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읽은 성경의 내용 중 많은 위로를 경험하게 한 부분이 있었다. 시편 31:15-16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군대 생활은 그냥 지나가는 것인데, 그때는 많이 깜깜했다. 가장 막내인 이 생활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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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문사
2016.03.2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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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방학 때 필리핀 뚜게가라오 지역에 단기 선교를 갔었다. 그곳에는 라굼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께서 교회를 개척하시기 전까지는 문명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었고, 심지어 필리핀에서도 투표권이 인정받지 못했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선교사님 때문에 지금은 도로도 놓이고 전기도 들어간 지역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빛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주일 저녁 그곳 교회들을 돌며 설교하고 8 라굼 교회라는 곳에 도착했다.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하고 밖에 나왔는데,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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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6.03.1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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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과정에는 반드시 첫 만남이 있다. 그 시작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처음 눈을 뜨고 사람들을 처음 본 순간일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첫 만남이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서도 우리는 첫 만남을 경험한다. 우리의 삶을 마치는 것 역시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늘 첫 만남의 연속인 듯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연습 없이 처음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 역시 이런 첫 만남의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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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6.03.0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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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태양이 자신이 보는 세상에 대해 말했습니다. “나뭇잎은 초록색이다.” 그러자 달이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나뭇잎은 은빛 색 이다. 그러자 태양이 또 말 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바쁘게 움직이며 산다. 그러자 달이 또 말했습니다. “그러면 왜 세상이 그리 조용하냐?” 사람들은 늘 잠만 잔다. 사람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자 해가 다시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말했습니다. 누가 그러니? 땅은 언제나 시끄러운데.. 이렇게 서로 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 때에 바람이 나타나 왜들 그렇게 쓸데없는 논쟁을 하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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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5.12.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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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솝 이야기 중 재미있는 당나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미 이전에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번쯤 듣고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루는 당나귀를 끌고 시장에 나가게 됐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수근 거리며 말하기를 당나귀를 타고 갈 것이지 왜 끌고 가느냐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마을을 지나갑니다. 그리고 얼마를 지나자 또 동네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아버지를 걸어가게 하는 불효자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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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5.11.0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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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인이란 한마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아니고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심리적인 차원이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실존적인 차원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그 자체가 생명체이기에 단순히 심리적 차원에서 만 머무르면 그 속성상 믿음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살아서 움직이는 삶의 실존적인 차원이 되려면 그 믿음이 우리의 구체적이 삶과 직접 연결이 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믿음은 바로 믿음의 행동성 입니다. 즉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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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5.10.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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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사진작가가 중국대륙을 말을 타고 홀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깊은 신앙의 회의를 품고 무엇인가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타고 가며 주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주여 당신의 모습을 한 번만 제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주님을 믿겠나이다.” 그 때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분명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라!” 그는 정신없이 가고 있던 진흙투성이의 길을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현상해 보았을 때 거기에 놀라운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던 눈과 흙 속에,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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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학보사
2015.09.30 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