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어,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군인 일천 명을 죽인 삼손은 슈퍼맨에 가까울 정도의 놀라운 힘을 받은 사람이다. 또 솔로몬은 전무후무하게 탁월한 지혜를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의 일대기를 관찰하면 의미 있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부여된 특별한 능력이 오히려 그들을 망쳤다는 것이다. 삼손은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겸손한 모습이 한 번도 없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없고, 자기의 삶을 조심하는 것도 없다. 모든 이야기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며 산 모습이다. 마지막 죽을 때 외에는 말이다. 자신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신의 힘을 믿고 산 그 오만함에 몰락한다.

 솔로몬도 비슷하다. 화려한 전성기 이후, 그의 노년의 상황을 언급한 열왕기상 11장의 모습은 비참하다. 온갖 우상의 신전을 다 짓고 거기서 절을 하고 경배한다. 자기 지혜를 통해 여러 힘 있는 사람들과 정략결혼을 하고 그들이 원하는 신전을 지어주어 그 관계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두 번씩이나 경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솔로몬도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지혜를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이 그에게 심판을 내리셨다. 만일 삼손이나 솔로몬에게 그런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다른 삶을 모습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그 능력이 그들을 비참한 것으로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익숙함이 아닐까?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놀라움의 반응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능력은 더 이상 놀라움이 아닌 자신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된다.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 익숙함 때문에 그들에게 능력을 주신 분에 대한 시선 돌림을 놓치고 자신에게만 집중한 모습이 된다. 그 능력이 오히려 자신들을 망치는 통로로 전락된다.

 이런 현상은 성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인간들이 경험하는 공통 현상이다. 그 예를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이 글을 쓰고 읽는 우리 역시 동일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환경, 관계 등을 포함해서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대부분의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만들고 있다는 어떤 것들도 사실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들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우리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창조주가 공짜로 주는 선물, 곧 은혜를 통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선물은 익숙함을 따라 우리의 일부가 되고, 그 익숙함이 우리 역시 창조주를 잊고 살게 한다. 그런 삶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우리만을 위해서 살게 하는 도구로 만들고, 그 도구는 우리를 창조주와 상관없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감사가 없고 당연함만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개인과 사회의 아픔 역시 그러한 과정의 산물이 아닐까? 성경과 역사가 주는 교훈을 듣고 조심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익숙함이 주는 망각의 과정에서 계속 깨어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은 감사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삶,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제반 요소들이 우리의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정성스럽게 살았으면 좋겠다.

교목실 이재현 목사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