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필자가 캐나다에서 공부하며 사역할 때 한 청년이 물었다. “전도사님의 이십 대는 어땠어요?” 당시는 30대 중반이었다. 그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 이십 대는 세 가지 감사가 있었다. 한 가지는 좋은 믿음의 선배들은 만난 것이다. 두 번째는 좋은 책들이다.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거나, 혹은 선배들이 권유한 책이 추천하는 또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꼬리물기 방식으로 알게 된 것들이다. 세 번째는 좋은 공동체이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이 있는 공동체였다.”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사 학년 중반을 지나가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필자가 맡고 있는 공동체 순장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어쩌다 비슷한 주제가 나오면 여전히 동일한 말을 한다. 하지만, 약간의 설명을 첨가해서 제시한다. 이십 대는 필자에게는 지난 시간이지만, 한동의 젊은이들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삶을 준비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지면을 빌어 이십 대를 지난 인생의 선배로서 동일한 조언을 해주고 싶다. 물론 이 조언의 내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이랬으면 하는 기대의 마음의 표현이다.
 먼저 좋은 믿음의 선배를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논어에는 三人行必有我師焉 (삼인행 필유아사언)이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자신의 스승이 될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배울 것이 있다. 신앙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의 선배란 꼭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정성스러운 삶의 몸짓을 갖고 있는 사람은 믿음의 선배일 수 있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보면 자신의 인생은 누군가에게 믿음의 선배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젊은 이십 대의 삶이 이랬으면 좋겠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고, 또 누군가에게 그 선배의 모습이 되기를 기대하며 하나님 앞에서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기대한다.
 두 번째는 책이다. 많이 강조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지만, 많은 인생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책을 통해 하나님과 세상과 사람에 대한 눈을 넓혔으면 좋겠다.
 세 번째는 좋은 공동체를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것이 가장 어려울지 모른다. 좋은 공동체의 정의도 어렵고 찾기도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좋은 공동체란 완전함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것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이다. 지금 좌충우돌의 모습이 있더라도 주 앞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을 귀하게 여기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이다. 젊은 이십 대에 그런 공동체를 찾고 관계를 맺으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더 좋은 것은 지금 속한 공동체가 그런 모습이 되기를 계속 추구하고 만들어 가는 것일지 모른다. 공동체는 완성된 어떤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는 혼자서 살아가지 않고 ‘지금 여기서’ 몸담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관계 속에 산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의 바름을 추구하는 몸짓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은 공동체를 찾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우리는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산다. 젊은 이십 대도 지나가고, 삼십 대와 사십 대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도 지나간다. 이 과정에서 어찌하면 하나님 앞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는 우리의 몫이고 질문이다. 한동이 이 질문을 안고 사는 젊은이였으면 좋겠다.

교목실 이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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