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할 때, 흔히 받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믿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칠 때에도 한번 쯤은 받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안보여요. 그런데 어떻게 믿을 수 있지요?” 이런 반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첫째,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겠다’는 주장은 사실 일상생활의 터전이 되는 물리적 세계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과 같다. 실제로 우리 눈앞에 보이는 탁자마저도 그 겉모습만 볼 뿐, 탁자에 관련된 전체적인 사항(뒷모습과 구성요소)을 동시에 볼 수 없다. 사람은 꼭 본 것만을 믿는 것은 아니다. 가령, 남극을 가보지 못한 사람도 남극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남극에 대한 많은 연구결과가 있고 실제로 다녀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많은 논증 방식들이 있다. 기독교변증학 시간에 다루는 다양한 논증 방식만 해도 30가지가 넘는다.
둘째,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 조잡한 수준의 경험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선, “보이는 것만을 믿겠다”는 주장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보이는 것만을 믿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주장(말)”이다. 그리고 그 주장을 “보이는 것만을 믿겠다”는 주장을 문자로 표현한 것은 “하나의 문장(글)”이다. 주장과 문장은 엄연히 다르다. 주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문장은 잉크로 인쇄된 단어의 조합으로 눈에 보인다. 다시 말해서, 어떤 주장 그 자체(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주장을 눈으로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자기의 주장 -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때라야 믿겠다”-은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성립한다. 따라서 이 주장은 스스로 모순되는 자기 논박적(self-refuting)인 견해, 자가당착의 오류에 해당된다. “하나님은 없다”는 자기의 주장은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타당하게 여기면서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상반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모순이 된다.
셋째, ‘하나님이 나의 눈에 보여야 믿겠다’는 주장은 “범주오류(category fallacy)”에 속한다. 범주오류란 A라는 범주의 대상에만 적용되는 속성을 B라는 범주의 대상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영이시다(요4:24). “영”이신 하나님을 물리적인 실재를 파악하는 ‘눈’을 통해서 보겠다는 것은 “범주오류”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전혀 볼 수 없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스스로를 인간에게 알려주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해서 알게된다. 만물을 통해 우린는 하나님의 존재를 추론하게 하며, 하나님은 아브라함, 모세, 노아, 바울 등 계시를 통해서 자신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이 계시하는 방법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으며, 산상수훈에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마5:8).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말한다. 내가 중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마음이 청결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거듭난 자인가? 나는 마음이 청결한 자인가?

교목실 김기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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