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태양이 자신이 보는 세상에 대해 말했습니다. “나뭇잎은 초록색이다.” 그러자 달이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나뭇잎은 은빛 색 이다. 그러자 태양이 또 말 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바쁘게 움직이며 산다. 그러자 달이 또 말했습니다. “그러면 왜 세상이 그리 조용하냐?” 사람들은 늘 잠만 잔다. 사람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자 해가 다시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말했습니다. 누가 그러니? 땅은 언제나 시끄러운데.. 이렇게 서로 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 때에 바람이 나타나 왜들 그렇게 쓸데없는 논쟁을 하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서 말을 합니다. 나는 하늘에 해가 떠 있을 때에도 불고 달이 떠 있을 때에도 분다. 해가 빛을 비추는 낮에는 해가 말 한대로 땅이 시끄럽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살고 나뭇잎도 초록색이다. 그러나 달이 빛을 비추는 밤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잠을 자고 온 땅이 고요해 지고 나뭇잎은 은빛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진실을 알지 못한다고 말 했습니다.
예수님은 해, 달, 그리고 바람의 주인이십니다. 그 분은 있는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다 보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한계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달도 되고 해도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시각은 부분적으로 보고 부분적으로 경험 하고 부분적으로 말하며 살아가는 것 입니다. 우리는 경험하는 것을 부분적으로 할 뿐 아니라 경험한 것을 이해하는 것도 부분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도 사람마다 다르게 부분적으로 경험하고 이해 합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서 그 사건이나 사람들을 이해하고 대화하고 경험하는 것 들을 부분적으로 이해 하고 경험하기에 잘못 이해하거나 오해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 보고 부분적으로 경험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1절 이하에 주님께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남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이유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우리가 부족 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도적적 이기 이전에 존재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존재적인 이유란 우리의 보는 관점과 경험, 그리고 해석하는데 있어서의 한계성, 왜곡성, 부분성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판단 하지 말라고 말씀 하시는 이유는 “네 눈에 들보” 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즉 눈 속에 있는 들보라는 것은 우리가 사물과 사건과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 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속에 잇는 들보라는 것은 우리 속에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성, 죄성, 주관성, 상대성 등등 입니다. 즉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전체를 보는 능력이 없기 때문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어서 말씀 하십니다.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언행의 변화 감정의 변화 등등...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가능 한 것입니다. 보는 관점이 바뀔 때에 이해가 바뀌고 이해가 바뀔 때 에 감정이 바뀌고 행동의 변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우리의 관점이 예수님이 세상을 보는 관점으로 보듯이 그러한 영적인 관점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통찰력이 성장 하기를 축원합니다.

최정훈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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