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사진작가가 중국대륙을 말을 타고 홀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깊은 신앙의 회의를 품고 무엇인가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타고 가며 주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주여 당신의 모습을 한 번만 제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주님을 믿겠나이다.” 그 때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분명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라!” 그는 정신없이 가고 있던 진흙투성이의 길을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현상해 보았을 때 거기에 놀라운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던 눈과 흙 속에, 잡초가 뒤섞인 진흙 밭 속에 예수님의 얼굴이 흑백 바탕으로 찍혀 있었습니다. 이 사진이 유명한 “당신이 나의 집의 주인이시요.” 라는 제목의 사진입니다. 허허 벌판 진흙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난 이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황무지가 변하여 주님의 인자한 얼굴이 되듯이 당신 인생의, 영혼의 황무지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당신이 지금 어떤 형편, 어떤 환경, 어떤 어려움 속에 있든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길을 가고 계십니까?
사진기사가 주님의 음성을 들은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그의 지식도, 경력도 그 외에 다른 그무엇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사진을 통해서 보여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의 마음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마음을 보신 것 입니다. 그러면 그의 어떤 마음입니까? 그에게 두 개의 중요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간절함과 가난한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을 향해서 간절함과 가난한 마음으로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십니다. 즉 주님을 만나는 문제는 인간의 두뇌의 문제도 경험의 문제도 능력의 문제도 아닙니다. 인간 마음의 문제 입니다. 잠언 8장 17절 말씀에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또한, 마태복음 5장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은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주님을 향해 간절한 마음을 가진 자는 마음이 겸손한자이며 동시에 마음이 겸손한자는 주님께 간절한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간절함은 절대적인 마음을 의미하며 가난함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겸손한 마음 입니다.
아기예수를 만나기 위해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찾아 왔습니다. 그런가하면 유대의 서기관들은 아가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남을 성경을 통해 알고 있고 또한 그러한 사실을 헤롯 왕에게 알려 주기까지 하면서도 아기 예수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동방 박사와 서기관들의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에 차이입니다. 지식적으로 성경을 알아도 마음이 교만하면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성경이 없었으나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우주와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자연계시”라 하고 성경말씀을 “특별계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연계시든지 특별계시든지 그러한 계시가 인간에게 진정한 계시가 되려면, 즉 진정 하나님을 만나려면 인간의 마음이 간절함과 가난함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자연계시든지 특별계시든지 간절함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에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보다도 오히려 주님께서 인간들을 만나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자신을 향해 간절함과 가난한 마음으로 찾는 자들을 만나 주십니다. 지금도 여러분들을 기다리시는 주님을 간절한 마음과 겸손함으로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 합니다.

 

최정훈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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