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인이란 한마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아니고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심리적인 차원이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실존적인 차원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그 자체가 생명체이기에 단순히 심리적 차원에서 만 머무르면 그 속성상 믿음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살아서 움직이는 삶의 실존적인 차원이 되려면 그 믿음이 우리의 구체적이 삶과 직접 연결이 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믿음은 바로 믿음의 행동성 입니다. 즉 행동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의 행동은 믿음이 있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행동 사이에는 그 두 사이를 연결 해주는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그 매개체가 바로 믿음의 의식, 사고방식 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이어주는 믿음의 개념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한 믿음의 개념 중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또는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신앙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 목사는 심지어 이러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무조건 고난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고난의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고난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고 고난에 대한 어떤 개념, 의식을 가지는가,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닭과 독수리는 폭풍이 올 때에 큰 차이를 보여 준다고 합니다. 닭은 자기의 몸을 날개 속에 파묻고 독수리는 반대로 날개를 펴고 폭풍에 몸을 싣고 더 빨리,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간다고 합니다.그리스도 안의 영성에 있어서 존재적 구조와 특성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안의 존재성은 고난을 통해서 강해지고 성숙하게끔 만들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사 고통이 있으므로 강하여지고, 적이 있으므로 연구하게 되고, 슬픔이 있으므로 깊어지고, 시련이 있으므로 정결케 됩니다. 시련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에 축복의 가면입니다. 사랑의 가면 입니다. C.S. Lewis 의 말을 빌리면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의 확성기"입니다. 팽이는 계속 때릴 때에만 계속 돌아갑니다.
우리 인생사 고난이 이어지는 것은 계속 전진하기 위함이요 더 높은 곳에 올라 가기 위함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인 전멸작전을 펴고 부하들로부터 작전 보고를 받는 내용이었습니다.
부하 1: 수령님, 저는 사막을 걸어가는 예수쟁이들에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사자의 입에서도 그들이 평화스럽게 기도를 하더군요
부하 2: 저는 바다를 항해하는 예수꾼들에게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암초에 부딪쳐서도 찬송을 부르더군요.
부하 3: 저는 그리스도인들의 한 교회를 찾아가 10년 동안 모든 일이 잘되고 평안하게 만들어 주었더니 그들의 육과 영이 완전히 썩어 버렸습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숨은 축복이요, 안일은 사탄의 숨은 저주입니다.
고난 속에서 즐거워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요.


최정훈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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