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종교간 통합과 상호존중을 말하는 종교 다원주의 시대이다. 세계인구의 비기독교인 비율은 67%, 우리나라의 경우는 약 80%에 이른다. 2012년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한국의 개신교인들의 의식변화가 심상치 않다. 한국개신교들 중에서 약 30%는 종교다원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궁합, 풍수지리, 윤회설을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종교다원주의는 “장님과 코끼리”와 “등산로”의 비유를 통해서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는 같은 신적인 존재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가령, 코끼리의 코를 만진 장님은 동아줄로, 귀를 만진 장님은 큰 부채로, 다리를 만진 장님은 두꺼운 기둥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들은 모두 코끼리의 한 부분을 말함에 지나지 않는다. 각 종교들은 동일한 신적 존재의 다른 표현이라는 뜻이다. 또한 등산로의 비유는, 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이듯이 모든 종교의 역할은 결국 같은 신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미국의 저명한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말처럼, 백화점의 물건 고르듯이 종교를 선택하는 현대인들은 모든 종교가 근원적으로 동일하기에, 어느 종교를 선택하든지간에 아무런 차이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모든 종교가 다 같은 신, 같은 진리를 말하지도 않는다면 각자의 종교선택은 너무나 현격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C.S. 루이스는 다른 종교들은 진리의 파편들을 가지지만, 진리전체를 갖지는 못한다고 본다. 우주의 기원과 도덕의 근원, 사후의 문제에서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종교의 ‘천국관’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매우 뚜렷하다. 이슬람교의 천국은 남성중심의 쾌락이 반영된 곳이다. 무슬림이 자살폭탄으로 순교하는 이유는 사후에 천국이 보장되고, 72명의 처녀를 선물로 받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천국에선 도덕성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볼 수 없고, 남성을 위한 술과 쾌락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흔히들 불교의 극락은 기독교의 천국과 유사하다고 말하지만, 왕생요집이라는 불경에 의하면, 극락도 윤회의 한 과정이며, 그 사람의 선업이 다하면 극락에서도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다음 생애로 윤회를 해야 한다. 그때의 고통은 지옥에서의 고통보다도 16배 강하다고 한다. 불교의 최종목적은 극락왕생이 아니라, 윤회를 벗어 무아에 이르는 해탈일 뿐이다.
마르크스가 기독교의 천국관을 인민의 아편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세의 고통과 불의를 외면하는 것은 윤회와 업보의 교리를 가진 종교들이다. 모든 것은 전생의 업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천국은 다른 종교의 견해와는 완전히 다르다. 성경을 보면, 천국은 세 종류이다. 주님 모신 마음의 천국, 선교의 과정에서 확장되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천국은 하나님의 의, 도덕성, 거룩함, 죽음과 눈물이 없는 상태이면도 동시에 분명히 실존하는 장소로 존재한다. R.C. 스프롤이 지적하듯이 “기독교에는 타협할 수 없는 초자연성이 있다.”
종교다원주의의 등산로의 비유와는 달리,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였고, 사도들은 “천하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행4:12)”는 전통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종교다원주의 시대의 무신론적인 회의주의가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잠4:12)”이라고 말한다.  


김기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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