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 이야기'로 보는 사회 갈등 이야기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심지어 우리가 피를 나눈 형제자매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가정이라는 정의는 상대적이다.

“혈연, 인연, 입양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친족원)로 구성된 집단.”(네이버 국어사전)

 

사전에서 정의하듯 가족의 구성원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공동체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가족과 사회는 많은 점이 닮아 있다. 인격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또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사회 속에서의 삶이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속해 있는 하나의 큰 공동체 우리는 그것을 사회라고 부른다. 하지만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자라와서일까, 사회 속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사회에 공존하기 위해선 서로에 대한 이해심이 중요하다. 이해 없이는 배려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HE DIDN'T SEE ME AS SEPARATE FROM HIMSELF." (그(찰리)는 저를 그와 별개인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위 대사에서 같이 찰리와 니콜은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의 갈등은 묵묵하게 커져만 갔다. 영화 <결혼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갈등은 뭐가 있는지 또 그에 따른 해결 방안은 없는지 알아보자.

 

Between You and Me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이해로 시작해 이해로 끝이 난다.

찰리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니콜
찰리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니콜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이 결혼 생활을 하며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했을까. 둘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서로를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찰리와 니콜은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부부 상담을 받고 있고 둘 사이에 뭔가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있는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일이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변호사 노라(왼)에게 사정을 털어 놓는 니콜
변호사 노라(왼)에게 사정을 털어 놓는 니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야기되었고 둘의 문제에 타인이 개입하면서 둘은 불행해져 갔다. 두 부부의 갈등을 깊어져만 갔고 니콜은 자의반 타의 반으로 변호사 노라를 찾아가면서 니콜과 찰리의 갈등에 불을 붙히기 시작했다. 변호사에게 이혼이란 물질적인 이득을 위한 전쟁 같은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인 반면 니콜과 찰리는 그저 둘의 너 나은 미래를 위한 담담한 마무리였다. 하지만 변호사들과 부부간의 목적이 너무나도 달라 두 변호사들 싸움 가운데 두 부부는 의도치 않는 상처를 서로에게 주게 된다. 무언가 잘 못 되었다 느낀 둘이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다.

서로의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 중인 찰리와 니콜
서로의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 중인 찰리와 니콜

둘의 사이엔 더 이상 이상적인 대화라는 것이 존재하기 불가능해 보였다.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다. 마음에 있던 것들이 터지면서 서로의 마음에 담아왔던 오해와 억울함이 터지면서 서로의 마음의 상처를 입히게 됐다.

니콜과 격양된 감정으로 싸우는 찰리
니콜과 격양된 감정으로 싸우는 찰리

시간이 흐르고 재판도 끝나면서 둘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둘의 마음 한구석엔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변호가가 주도한 이혼 소송에 대한 의문점이 남았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싸움이 아닌 대화와 또 다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웃지 못한 싸움에서 유일하게 웃은 사람은 니콜의 변호사 노라였다. 니콜이 승소에서 승리하면서 노라에겐 돈과 커리어가 쌓였기 때문이다. 승자 없는 싸움에도 승자는 존재했던 것이다.

대화가 필요해

사람은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영화는 찰리와 니콜이 서로에 대한 장점을 적은 노트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 또한 자기 주관으로 바라본 서로의 모습이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지가 아닌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객관적인 질문이 아닌 주관적인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 어디에 속해 있든 각자 나름의 규칙 속에 살아간다.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즉, 많은 사람들 속에 쉽게 정의하지 못하는 중간점을 우리는 규칙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정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각자 의미하는 바가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오해를 줄 수도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우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온 다른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견해와 지식 또한 다르다. 우린 대화가 필요하다.

이혼 상담사와 이야기 중인 찰리와 니콜
이혼 상담사와 이야기 중인 찰리와 니콜

우리의 갈등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에게 치이는 일이 많다. 특히 팀 모임이라는 특이한 특성을 가진 한동대학교에선 더더욱 말이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한동대학교에선 더더욱 말이다.

동아리에서 갈등을 겪은 A씨(18)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위한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한 인원에 대해 실수에 대한 정당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파와 실수이니 너무하게 대하지 말라는 파로 나뉘게 되었다. A씨는 중립의 입장으로써 서로의 입장을 들으며 두 파가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중 A씨는 “공동체라는 것이 서로를 위한 마음이 가장 중요한데 타인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 회의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기심이 불러온 이 사건이 사랑을 가치관을 내세우는 동이리에 정체성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A씨는 끝으로 “이러한 갈등이 동아리뿐만 아니라 어디든 존재할 수 있는 일”이라 말했다. 이러한 사건이 공감을 얻을 수 있기에 충분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다른 존재이고 때문에 다분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큰거 온다

마음에도 용량이 있다. 넘치면 터진다.

찰리에게 격양된 감정을 표현하는 니콜
찰리에게 격양된 감정을 표현하는 니콜

마음을 닫은 순간 두 의견 사이에서 대화와 조율은 쉽지 않다.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2020년 5월 미네소타주 한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은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이하, BLM)를 외치며 거리에 나왔다.

Black Lives Matter

Black Lives Matter 시위 현장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사진을 들고 있는 여성
Black Lives Matter 시위 현장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사진을 들고 있는 여성

과연 이번이 경찰이 흑인을 사망케한 첫 번째 사건일까. 미국에서 흑인들의 위치는 항상 을이었다. 1600년대 초반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1863년 1월 1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이 있기 전까지 그들에게 인간 대우는 없었다. 노예라는 말은 사라졌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인해 지금까지 많은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이었기에 미국 경찰은 흑인촌과 흑인들은 경계 대상이 되었고 지금까지 과잉진압 논란의 중심이 되어왔던 것이다.

2017년부터 2021년 9월까지 미국 인종별 경찰 총격에 의한 사망 횟수 - 일러 이지혜 디자이너
2017년부터 2021년 9월까지 미국 인종별 경찰 총격에 의한 사망 횟수 - 일러 이지혜 디자이너

위 그래프를 보면 인구수에 비해 흑인의 총기 진압 사망률은 다른 인종의 비율보다 훨씬 높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억울한 모습으로 살아와야 했던 흑인들의 분노가 2020년 5월에 터진 것이다.

Stop Asian Hate

세상을 한순간에 바꾼 COVID-19의 창궐로 인해 아시아인 혐오 사건 또한 화두에 오르게 되었고 이어서 ‘Stop Asian Hate’운동이 시작되었다.

(Stop Asian Hate 시위에 참여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산드라 오 사진)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해 온 나라이다. 이는 미국 건국 이념과 연결이 되어있는데 미국인 또한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관점으로는 인구수 유지를 위해 이민을 받는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민 정책 등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이민자들을 환영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지금까지 받아온 차별이 그들이 과연 이민자로써 존중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만한 교육이 부족했던 지난날의 미국이었다.

같은 민족이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한 지붕 아래 같이 살기란 쉽지 않다. 만약 다른 문화권 사람이라면 더더욱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생겨나는 부족한 이해심이 보이지 않는 갈등을 야기하였고 지금까지 미국은 혼란스러운 상황속을 지속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내에 유색 인종들의 분노가 쌓이고 쌓여 지금의 ‘Black Lives Matter’와’Stop Asian Hate’로 이어진 것이다.

 

갈등 속 승자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소수들의 움직임이 갈등을 줄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등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마치 영화 속 두 변호사같이 말이다.

이혼 소송 재판을 치르는 찰리와 그의 변호사
이혼 소송 재판을 치르는 찰리와 그의 변호사

이번 여름 우리의 더위를 날려버린 한국 양국 국가 대표팀 안산 선수의 금빛 향연이 벌어지던 중 안산 선수의 머리 스타일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짧은 머리가 남성 혐오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선수 사상을 검증하고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억지가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논란 속에 정치인들의 '안산 선수 지키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런 정치인들의 행보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런 행보 속에서 타당 의원을 언급하는 등 정치인들의 갈등을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다.

 

이해 못

갈등은 오랜 시간 인류 역사에서 존재해 왔다.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든 갈등은 역사를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갈등으로 인한 변화가 있었고 노력이 있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만 보아도 5.18 민주화 운동, 촛불 집회 등 갈등으로 비롯된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갈등은 어떠한 이유로 생기는 것일까. 사회학 박사 황옥자 박사님의 논문 고대 아테네 사회의 갈등, 화해, 공존에선 아테네에서 비롯된 수많은 갈등 중 특히 빈부격차와 사회 계급에 대한 갈등이 생긴 것은 “노력으로 인한 부나 군사적 기여도에서도 혈통 중심 사회의 장벽을 넘을 수 없었던 한계들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원전 7세기 이전까지 아테네는 에우파트리다이로 자칭하는 순수 혈통 귀족 중심 사회였다. 어떠한 노력도 결국 본인의 신분이 혈통이 귀족이 아니라면 무용지물이 되는 사회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겼고 가난한 자들은 부에 대한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BLM와 Stop Asian Hate 같은 인종차별 운동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비롯된 사회적 분노로 읽을 수 있다. 오랫동안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인한 부당한 대우가 그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사회적 분노가 아닐까. 인종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 장애가 있다는 이유, 가난하다는 이유 등등에서 비롯된 차별로 인한 사회적 약자들이 가지는 분노는 대부분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사회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했다.

 

갈등을 이기는 사람들

역사적으로 갈등을 야기하는 것도 해결하는 것도 인간이었다.

“오늘날, 모든 미국인들은 재키 로빈슨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97년 4월 15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키 로빈슨의 업적을 기리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재키 로빈슨은 미국 야구 리그인 메이저 리그에 활동한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이다. 그가 데뷔한 1947년의 미국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그가 유색 인종으로써 백인들이 주를 이뤘던 스포츠에서 두각을 내고 백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선수 시절 1518개의 안타 137개의 홈런 734타점과 197도루를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의 전설이 되었다. 그는 그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웠고 그의 투쟁은 지금까지 많은 흑인과 스포츠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전 브루클린 다저스 내야수 재키 로빈슨
전 브루클린 다저스 내야수 재키 로빈슨

영화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 실존 인물 캐서린 존슨은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 활동한 흑인 여성 수학자이다. 어릴 때 부터 수학에 큰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을 받아왔다. 버지니아주 흑인 공립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그녀는 1952년 나사(NASA)에서 계산원으로 취직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만 18세의 나이로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 수학과를 최고 학점으로 졸업한 비상한 두뇌는 금방 소문이 퍼졌고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과 유인 달 탐사 임무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 중 한 명이 되었다.

수학자 캐서린 존슨
수학자 캐서린 존슨

2020년 2월 10일 (미국시간) 전 세계가 상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의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포함 4관왕을 하였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영화 최초의 오스카 수상 기록이다. 봉준호 감독은 앞서 또 다른 저명한 시상식인 “골든 글러브”에서 “자막의 장벽을, 장벽도 아니죠, 1인치 정도 되는 그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자막이라는 작은 벽 뒤에 수많은 문화를 즐길 수 있고 그것을 실제로 성공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봉준호 감독의 미국에서의 성공은 문화 경제적 측면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미 한류로 인정받고 있던 한국 문화 시장이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포문을 열어주었다. 최근 전 세계 모든 넷플릭스 서비스 지역에서 1위를 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 봉준호 감독의 업적의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사회 풍자와 매우 한국스러운 소재 “기생충”이 먼저 전 세계에 선보였던 얼굴이다. 과거 서양권에서 만든 콘텐츠에서 아시안의 이미지는 매우 한계적이었다. 우리 민족 고유의 것으로 성공을 한 “기생충”은 아시아 문화의 인식을 세계를 대상으로 변화시켰다.

오스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봉준호 감독
오스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봉준호 감독

이처럼 우리가 상상치도 못한 인물들의 엄청난 활약으로 인해 편견을 보란 듯이 깨부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색안경을 조금이라도 벗겨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고 편견을 벗은 후 미약한 교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테네 민주정 역사에서 가장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받는 클레이스테네스(BC  570~508)는 무엇보다 혈통 중심의 귀족사회에서 평민 중심으로의 민주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었다. 당시 대다수의 갈등은 지역을 기반한 당파(해안,  평지,  산지)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들을 섞어서 하나로 묶는 것은 이러한 갈등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출처 - 고대 아테네 사회의 갈등, 화해, 공존, 황옥자) 다양한 민족을 하나로 묶었던 이유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도 민주적인 공평성 여성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정책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서로를 알던 모습에서 진실된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상처뿐인 싸움

찰리와 니콜은 수많은 싸움과 법적 논쟁을 끝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서로 껴안은 찰리와 니콜 가족
서로 껴안은 찰리와 니콜 가족

둘의 관계에 굳은살이 배긴 듯 보인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 서로에 대한 진실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둘은 이혼 후 서로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한 이후로 수없이 많은 갈등이 반복되고 생겨났다. 그리고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움직임이 있었고 끝나지 않을 인간의 숙제이다. 갈등 해결의 궁극적인 목표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인데 그렇기 위해선 서로를 친애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친애(phila) 개념은 단순한 의견의 일치가 “마음의 일치(homonoia)”를 의미한다. 특히 강조했던 것은 ‘시민들 간의 친애’였는데, 공동체가 마음의 일치를 이룬다는 의미는 “무엇이 폴리스에 유익이 되는 일인가에 관해 견해가 일치할 때, 그리고 동일한 것을 선택하고 공동의 이름으로 결의한 것을 실행”에 옮길 때 일어나는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즉, 우리가 공동체원으로써 지켜할 함께할 세상을 위해선 서로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고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한다. 아테네는 갈등과의 전쟁에 평화가 오기 위해 한쪽의 파멸이 아닌 서로의 화해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전한다. 유토피아 같은 사회는 없다. 이상적인 것엔 항상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소수의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완만한 대화를 통해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혼란스러운 사회속에 우리가 정말 지금까지 소통을 하려 했는지 혹은 이기려 남을 깎아내린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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