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구가 없었다면?

A : 2020년,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바이러스는 불확실성을 가져왔고, 이는 내가 다니는 한동대학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하는 것인지, 온라인으로 하면 페이퍼는 어떻게 내야 하는지, 푸드 포인트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생활관에는 언제 입주할 수 있는 것인지, 입주할 수는 있나? 알바는 어디서 구해야 하지? 또 공지가 번복되면 어떻게 하지? 알려주는 이 없다. 우리는 총학생회 집행부가 없기 때문이다.

B : 코로나에 걸렸다. 어디에 연락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온라인 수업이 자꾸 끊긴다. 영상이 잘 안보인다. 불편하다. 어디에 말해야 하지? LMS 서버 문제, 학사일정 변동 문제는 다 어디에 얘기해야 하지? 학교에 누가 전달해주지? 내 권리는 누가 대변해주지? 아무도 없다. 총학생회 집행부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학교에서 공지해줄 때까지 기다릴 뿐이고, 결정한 사항을 받아들일 뿐이다. 가끔 학교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총학생회 집행부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코로나19 상황에 “학생기구가 없었다면?”이라는 상황을 전제로 써본 시나리오다. 이는 결코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시나리오에 등장한 모든 상황은 25대 총학생회 집행부 “한걸음”(이하 한걸음)의 “코로나19 사태 관련 상황공유” 1~8 공지를 통해 밝힌 협의 내용들이다. 누군가의 희생과 섬김이 없었다면, 단일후보로 나온 한걸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시나리오를 현실로 마주할 수 있었다.

총학생회와 총학생회 집행부 간 소통문제, 그리고 단일후보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익숙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은 까닭은, 이 문제들이 내 몸에 직접 와 닿는 불편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통이 잘 안되는 것 같았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단일후보가 문제인 것 같기는 했지만 조금 아쉬운 정도였다. 그러나 2020년 올해, 학생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은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우리 몸에 와 닿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혼란은 학생기구, 학생정치의 역량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학사일정, 수업방식, 생활관 입주부터 한동의 수많은 동아리와 학회 등 공동체의 운영까지 학생정치가 필요하지 않은 영역이 없었다.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성은 총학생회 집행부 한걸음(이하 한걸음)과 자치회(이하 이루심) 에게 “학생 권익의 대변”을 요구했다. 그간 학생 복지에 집중했던 학생기구들의 정체성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코로나19는 학생기구가 민원처리와 복지 사업을 넘어, 한동대학교 학칙에 명시된 총학생회 집행기구로서 “학생의 권익 대변”의 역할을 해야 함을 상기시켰다. 이는 동시에 그간 묻어두었던 소통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소통 : 총학생회 집행부와 총학생회 간 괴리

흔히 우리가 ‘총학’이라고 부르는 ‘한걸음’, ‘페이스메이커’는 총학생회 ‘집행부’이며, ‘총학생회’는 해당 학기 한동대학교에 등록한 모든 학부생이다. 학생회칙 제7조에 따라 총학생회는 ▲학생자치활동에 관한 중요 사항 ▲학생권익과 밀접한 사항 ▲본교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정책의 수립 및 진행에 있어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고, 이를 위한 기구가 총학생회 집행부이다. ‘한걸음’, ‘페이스메이커’는 결정을 집행하는 기구일 뿐, 총학생회의 본질은 학생인 것이다. 따라서 집행부는 특정 사안을 결정하기 전에 총학생회의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여론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총학생회와 집행부의 괴리가 발생하고, 집행부 결정의 정당성은 낮아진다.

학생기구가 권익을 제대로 대변한다면 지지와 응원을 보태고, 그렇지 않다면 날카로운 비판으로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학생정치참여의 가장 빠른 길이다. “나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학생기구에 필요한 것은 관심이다.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면 학생기구에게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학생 권익의 대변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관심은 학생기구의 정당성이며, 정당성 없는 학생기구는 움직일 수 없다. 학생기구가 내린 결정의 정당성은 여론에 근거한다. 여론은 학생들의 관심의 표현이다. 결국 총학생회 집행부는 소통을 통해 여론을 파악해야 하고, 총학생회는 소통을 통해 여론을 표출해야 한다.

참여 : 90% 득표율, 50% 실 지지율

매 학기 학생기구를 세우는 시기가 되면 한동의 학생 정치는 두 가지 문제에 빠진다. 첫째로는 후보가 없다. 단일후보는 고사하고 한 팀이라도 나와주면 고마운 일이다. 실제로 자치회의 경우 후보가 없으니 임시기구 체제로 출범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특히 2017년 23대 총학생회 집행부 선거는 29%의 낮은 투표율을 보여 개표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에 이뤄진 재선거에도 등록 후보가 없자, 동일한 정회장 후보가 ‘믿음’이라는 캠프로 재출마하여 당선된 바 있다.

▲일러스트 황지민 기자 hwangjm@hgupress.com
▲일러스트 황지민 기자 hwangjm@hgupress.com

 
둘째로는 투표율이 낮다. 매 선거에서는 최소득표율(50%)을 겨우 채우는 상황이 반복된다. 최근 이루어진 5번의 22대부터 25대 총학생회 집행부 선거의 투표율(23대는 보궐선거까지 총 2회) 은 순서대로 ▲58. 4% ▲29.4% ▲56.7% ▲63.5% ▲52.0%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 였다. 최근 다섯 번의 선거에서 열명 중 여섯 이상이 투표한 선거는 24대 총학생회 집행부 선거가 유일했으며, 2017년 23대 총학생회 선거는 최소 투표율 미달로 개표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체 유권자 중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의 비율은 ▲53.0%, ▲49.2%, ▲59.7%, ▲47.7% 이다. 투표를 통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시한 사람의 비율은 열명 중 다섯 명 내외이다. (24대 총학생회 ‘페이스메이커’ 제외)

득표율과는 별개로, 낮은 투표율은 학생기구의 정당성과 대표성을 약화시킨다. 내 손으로 뽑은 기구가 아니니 관심도, 책임도 옅어진다. 총학생회의 권익을 대변하는 총학생회 집행부와 자치회의 설득력은 근본적으로 대표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고루하지만 학생기구가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길 원하는 학생이 학생정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단순한 방법은 “투표”이다.

단일후보 매너리즘

▲일러스트 황지민 기자 hwangjm@hgupress.com
▲일러스트 황지민 기자 hwangjm@hgupress.com


다만 투표율이 높아지더라도, 단일후보 매너리즘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큰 의미가 없다. 단일후보로 선거가 진행되면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50%에 육박하는 투표 미참여율은 학생정치에 대한 무관심에 더해, 단일후보로 인한 대안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낮은 정치효능감을 시사한다. 어차피 대안이 없기에 투표장에 나가 반대의사를 표시해봤자 무의미할 것이라는 무력감을 가진 이들이 생기게 된다. 

“민주주의는 ‘일반 시민의 지지에 정당성의 기초를 둔 정당과 정치가들의 경쟁체제’이다” 정치학자 박상훈 작가는 민주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의 정의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쟁체제’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정당들이 서로 경쟁하며 ‘다양한 시민사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회로 발전하는 정치형태가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총학생회를 대표하는 집행부 후보가 계속해서 하나뿐이었다는 점은 학생정치가 별 다른 발전 없이 지속되어 온 이유가 될 수 있다. 학생정치에서 ‘야당’의 부재는 그간 집행부를 견제할 세력이 아예 없었다는 말과 같다. 이는 집행부의 ‘공약 다양화’를 방해하여 비슷한 공약들만 반복되게 만든다. 본지는 이를 ‘단일후보 매너리즘’이라 명하기로 했다. 

제22대부터 제25대 집행부까지 총 4개년의 선거 공약집을 분석해본 결과 ‘학생정치, 학술, 소통, 글로벌, 복지, 문화, 사회협력, 신앙’ 분야에서 꾸준히 공약이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중 ‘학술, 글로벌, 복지, 문화, 신앙’은 이름까지 동일하게 반복됐다. ‘학생정치’와 ‘소통’은 둘 중 하나의 이름으로 합쳐져 나온 경우까지 포함하면 4개년 동안 꾸준히 등장했다. ‘사회협력’의 경우 제23대 집행부 ‘믿음’을 제외하고 모든 집행부 공약집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제23대 집행부에서 사회협력 관련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던 경우를 제외하면 위 여덟 공약은 최근 4개년 집행부 공약집에서 동일하게 등장했다.

위 여덟 부분의 공약이 학생사회에 꼭 필요한 건 맞다. 다만, 그 외 분야의 공약이 없다는 점은 5년 동안 등장한 단일후보 집행부 중 공약의 차원에서 차별성 있는 집행부는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딱 한 번, 제24대 집행부 페이스메이커에서 ‘취업지원’ 카테고리를 내세웠지만, 이 또한 ‘복지’ 차원의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위 여덟 카테고리와 크게 차별성이 없다. 5년동안 반복됐던 공약들 속에,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장애인과 채식주의자 등 주류라는 울타리 밖에 위치한 학생들은 5년간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집행부 후보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진정한 의미의 ‘모두를 위한 집행부’가 등장하여 단일후보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행부가 놓친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견제세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 집행부 후보의 다양화가 이뤄지고, 피치못해 단일후보일 경우라도 다양한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약을 내세워야 총학생회 집행부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복수후보, 매너리즘 탈피도 가능할까?
 

▲사진 황지민 기자 hwangjm@hgupress.com
▲사진 황지민 기자 hwangjm@hgupress.com

소통과 참여.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26대 총학생회 집행부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Keeper”와 “회복”, 두 캠프의 역할이 막중하다. 이들의 경쟁은 비단 26대 총학생회 집행부를 결정하는 선거임과 동시에, 꾸준히 지적 받아온 소통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다. 실제로 기호 1번 “KEEPER” 캠프는 카카오톡 오픈프로필과 오픈채팅방을 활용하여 익명을 포함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고, 기호 2번 “회복” 캠프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이벤트를 통해 홍보와 의견 수렴을 동시 진행하고 있다. 이런 이색적인 의견 수렴의 노력이 지속력 있는 방식으로 임기 내내 이어질 필요가 있다.

더불어 단일후보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내실 있는 공약과 정책을 구성하여 서로의 “대안”이 되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위에서 확인했듯 대안의 부재는 민주적 학생사회 건설에 큰 결함이 된다. 이번 집행부 선거에 출마한 두 후보 또한 서로를 견제하며, 동시에 서로가 놓친 학생사회를 조명하여 ‘모든’ 학생들의 권익이 대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5대 총학생회 한걸음과 23대 자치회 이루심에 대한 평가도 명확히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 권익을 잘 대변했는가?” 그리고 “차별성 있는 공약 이행을 해왔는가?”라는 준거로 이들을 평가하는 것은 한동대의 학생정치와 학생기구에 방향성 내지는 반면교사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2편에서는 “한걸음의 걸음은 어디를 향해 있었는지?”, “이루심은 무엇을 이루었는지?”라는 질문에 대답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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