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뜨거웠던 2021년 여름 대한민국을 달군 건 지구온난화뿐이 아니었다.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배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보여준 행보는 대한민국을 뜨겁게 만들기 충분했다. 올림픽 스타들이 주목받는 건 흔하고도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사례는 다소 이례적이었다. 하계 올림픽에서 ‘여자 구기 종목’ 선수들이 주목되었다는 점이 그렇다. 하계 올림픽의 메인이벤트는 항상 남자 축구, 남자 야구, 혹은 남녀불문 양궁이었다. 인기 종목이거나 ‘한국이 엄청나게 잘 하는 종목’이거나. 여자 배구는 인기종목도 아니고 양궁만큼 압도적인 실력도 아니다.

여자배구 선수들이 선술한 이유에도 올림픽 이후 방송 출연을 독차지한 이유는 그 만의 ‘독자적인 멋’을 보여줬다는 점에 있다. 180 센티는 가뿐히 넘는 언니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불타는 투지와 경기장 밖에서의 호쾌한 모습들. ‘여자가 하는’ 스포츠가 아닌 또 하나의 스포츠 그 자체였다. 선입견을 품을 틈도 없이 그 자체의 멋을 보여주니 전 국민적 지지와 관심을 받게 된 셈이다.

한동에서도 여자 풋살 동아리 ‘FC 차요차요’, 여자 농구 동호회 ‘스위시’ 등 여성 스포츠 단체들이 히딩크 필드와 농구장을 달구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도 벌써 이천 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 여성 스포츠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꽤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시대가 분명 변했다. 관중석을 지키던 그들이 필드로 나왔다. 본지는 ‘세상을 바꾸는 조용한 움직임’ 새로운 시리즈로 FC 차요차요를 만든 15학번 최주연 졸업생을 만나 여성 스포츠에 관해 묻기로 했다.

최주연 졸업생 사진 – 본지와 화상 인터뷰 중
최주연 졸업생 사진 – 본지와 화상 인터뷰 중

Q. 차요차요를 만드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동아리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  첫 시작은 자치회에서 주최하는 여차 풋살 대회였어요.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거예요. 마지막 경기 때 앞으로 이걸 할 기회가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주기적으로 축구 할 수 있는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다가 여자들끼리 같이 공을 차는 동호회를 만들게 되었어요. 축구에 대한 완전 첫사랑이잖아요. 이 불타는 열정을 공유하면서도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친구들을 기대하고 있었어요.

 

Q. 당시 동아리원들은 이전에 운동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나요?

A. 사실 처음 동아리를 만들 때 급하게 명단을 짠다고 ‘아 축구? 뭐 조금 흥미 있지’ 정도 하는 사람도 다 넣었어요. 동아리가 되고 난 뒤에 사람들을 더 모아야겠다 싶어서 포스터를 붙이기 시작했죠. 저랑 창단 멤버들이 ‘도대체 누가 올까? 어떤 사람들이 올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했는데 진짜로 체형부터 나이 완전 다 가지각색의 여학우들이 모인 거예요.

돌아가면서 소개를 하는데 연령대, 학번, 나이, 풋살 경험 다 달랐어요. 그런데 하나 되게 공통적이었던 거는, ‘우와 이거 재밌겠다’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자기 시간, 노력을 투자해서 해보고 싶었던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차요차요 리크루팅 포스터 사진 - 최주연 졸업생 제공
차요차요 리크루팅 포스터 사진 - 최주연 졸업생 제공

Q. 아까 포스터를 붙였다고 하셨잖아요. ‘관중석을 넘어 필드로 ‘ 라는 슬로건인데, 그 슬로건을 그렇게 정하신 계기나, 특별한 의미를 알 수 있을까요?

A. 말 그대로 항상 관중석에 앉아 있었잖아요. 팀축구에서도 항상 여성들이 응원하는 위치에 있잖아요. ‘왜 저 사람들만 팀 활동하고 우리는 서포트 하는 거 같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관중석을 벗어나서 필드로 간다는 게 획기적인 변화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조회대 옆 커다란 계단에 오래 앉아 있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데, 거기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뛴다는 것, 그 슬로건 자체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Q. 동일한 제목의 다큐멘터리도 만드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여자풋살을 주제로 영상을 만드신 이유가 있나요?

A. 풋살을 처음 접하고 축구 수업을 들으면서 되게 힘들었어요. 남자들 사이에서 저 혼자 여자인데, 그럼 시선도 이미 쏠리거든요. 그 과정에서 압박을 받을 때 되게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그러기에는 내가 이 스포츠를 너무 사랑하고, 이 경험을 너무 좋아한다는 모순적인 두 감정이 충돌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걸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담아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풋살을 하면서 여성으로써 몸에 대해 가지는 생각의 변화들도 있었어요. 날씬하고 다리에 근육이 없는 몸을 선호했다면 이제는 그냥 저 골대에 공 하나 더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튼튼한 다리를 더 선호하게 되는 여러 가지 변화를 보면서 언제쯤 이거는 한번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때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이걸(풋살) 내가 끝까지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코치님이 여자애들 봐주라고 공 주라고 하는데, 그런 게 너무 자존심 상하면서도 그렇게 봐줘도 골을 못 넣고 찬스를 못 살리고 이런 날들이 있었어요. 그런 날들에 힘들 때, ‘그래도 오늘 콘텐츠 조금 나왔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제가 못하면 못할수록 그림이 나오는 거잖아요. 되게 좌충우돌하는 그런 그림이. 그런 식으로 마음을 달래면서 했었던 것 같아요.

 

 

Q. 여자 풋살 동아리를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반응은 어땠나요?

A.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멋있다’ 그런 말인데, 저는 되게 민망해하거든요. 물론 의도도 잘 알고 적당한 리액션을 하기 위해서 말하기도 하겠지만, 여자가 풋살 하는 게 조금 더 흔해진다면, 예를 들어 ‘나 수영 좋아해’ 하면 ‘아 진짜? 너 수영 좋아하는구나’ 하듯이 자연스러웠으면 해요.

 

Q. 풋살 경기를 뛰면 어떤 느낌을 받나요?

A. 우선 정말 원초적으로 아드레날린이 뿜뿜해요. 진짜 이런 감정이 있을 수 있구나. (처음엔) 저도 너무 놀라서 거의 간증하다시피 친구들한테 얘기했거든요. 진짜다 이건 진짜다. 콜라 마시면 슈가 하이 오듯이 몸에서 바로 반응이 나왔어요. 뛰고, 멈추고, 공을 원하는 방식대로 컨트롤하고, 간혹 골을 넣는다거나 팀에 기여를 했을 때 느끼는 쾌감과 모든 신체적 반응이 정말 저를 즐겁고 행복하게 했어요.

되게 신기했던 게, 지금까지 저에게 운동은 어떻게든 동기부여를 하면서 해야 했는데 이거는(풋살은) 그럴 필요가 없는 스포츠인 거예요. 그래서 그때 깨달았죠. 왜 학교에서 남자애들이 쉬는 시간 10분에 축구 한다고 나갔던 건지. 10분이면 운동화 신는데 3분, 거의 5분 내지 7분밖에 못하잖아요. 굳이 왜 저럴까 했는데, 이 재미가 있어서 이랬구나 싶었죠. ‘왜 자기들만 알고 있었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두 번째는 팀플레이인 것 같은데, 축구나 풋살도 일상의 축소라고 생각해요. 다 강점이 있잖아요. 혼자서는 다할 수 없는 거고, 아무리 잘난 사람도 잘났으면 그 사람이 잘난 걸 (다른 플레이어들이) 알기 때문에 다 수비를 해서 이 사람이 잘한다고 골을 넣을 수 없는 구조이거든요. 그 와중에 서로 발이 맞아서 패스를 통해서 수비를 이겨내고 골을 넣었을 때 그 뿌듯함? 그런 게 되게 짜릿한 것 같아요. 축구 하면서 친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뭘 또 축구하다 친해져’ 이랬는데, 서먹하게 인사했던 사이끼리 패스가 잘 맞고 골이 들어가기만 하면 이제 바로 웃으면서 눈을 마주치고, 하이파이브하고, 이러면 정말 확 친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차요차요 하는 애들도 사실 회식 같은 거 많이 안 했는데 운동하면서 끈끈하게 다들 친해졌어요.

 

Q. 차요차요 활동을 하시면서 혹시 다른 학교랑 친선경기를 붙은 적도 있나요?

A. 다른 학교랑 친선경기를 나간 적은 없고, ‘다이제’라고 포항지역 여자 풋살팀이 있어요. 그쪽 팀이랑 경기를 첫 친선을 했었죠. 그 팀 회장님이랑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경북 포항 지역에서 열리는 여자 풋살 대회도 알게 돼서 외부 경기도 경험했어요. 다이제 팀한테는 처참히 패했고 대회에서도 꼴등하고 했죠. 그래도 되게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저희가 에이스 몇 명 있었던 것뿐이지 팀플레이에는 미숙했으니. 그때 자극을 많이 받았고 애들이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같은 학우분들 중에 코치를 구하고 그때부터 정말 불타듯 열심히 했어요.

그 다음 학기 다이제와 다시 붙었는데 저희가 첫판을 이긴 거예요. 결국 지긴 했지만 어쨌든 저희의 가능성을 봤던 시간이었어요. 지금은 차요차요가 다이제랑 맞먹을 수 있는 경기력이라고는 들었는데, 모르죠.

당시 차요차요 경기 사진 – 다큐멘터리 ‘관중석을 넘어 필드로’ 중
당시 차요차요 경기 사진 – 다큐멘터리 ‘관중석을 넘어 필드로’ 중

Q. 동아리 운영을 하시면서 어려웠던 적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어떤 단체이건 아무래도 참여율에 대한 고민이 늘 많잖아요. 운동 동아리는 인원이 적으면 플레이가 불가능한데 사람들이 점점 빠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희가 다이제와 경기, 그리고 대회 후에 연습 시간을 늘렸는데 이게 좀 크긴 했죠.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그냥 공놀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 같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져가고 싶었고, 제가 그런 지지부진 하는 저의 모습을 못 견뎠고, 같은 회원분들도 대부분 승부욕이 있는 분들이었어요. 무조건 이것보다는 ‘잘해야 할 맛이 나지’ 이런 생각이었던 거죠. 다만, 중심멤버들은 그랬는데 다른 멤버들이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 때 조금 힘들었죠. 남자 코치에게 물었는데 남자들끼리 있으면 약간의 서열문화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또 동기부여가 되고 말이죠. 그래서 ‘여자들은 그런 게 없으면 어떻게 그걸 가져가야 할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게 없는데 굳이 가져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결국 드는 거예요. 그리고 여자들끼리 으쌰으쌰 하면서 참여율을 높일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뭔가 답이 있으면 딱 말해드렸을 텐데, 열심히 고민했던 기억들밖에 없네요.

 

Q. 학교 내에 있는 남자 스포츠 동아리와 경기를 한 적도 있나요?

A. 경기는 아니었지만, 혹시 밀어내기 아세요? 새벽에 시트장이 예약이 끊기는 시간이 있어요. 그러면 이제 그 시트는 공공의 것이 되잖아요. 그러면 거기서 축구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다 모여요. 팀을 만들어 가는 경우도 있고, 개인이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 팀끼리 붙는 거죠. 토너먼트 형식으로. 그래서 이기면 계속 플레이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겁도 많고 자존심도 강해서 방어기제로 못하는 모습을 사람들한테 안 보여주고 싶어서 안 찼는데, 당시에 같이 경기하던 다이제 회장님께서 해줬던 말이 용기를 줬어요. 제가 회장님한테 ‘멋있게 이겨주세요’ 하니까 ‘아니 같이해야지 무슨 소리 하냐, 무조건 같이 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종종 그 남자분들이랑 같이 찼었죠.

내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런 도전들이 내 앞에 식탁처럼 차려지는 느낌이었어요. 풋살을 하면서, 제가 어떻게 보면 마주하기 싫었던 저의 방어기제들, 잘하는 것만 보여주고 싶고 도전을 은근히 두려워했던 것들이 되게 의도치 않게 깨졌던 것 같아요.

 

Q. 졸업하고 나서 지금도 풋살을 계속하고 계신가요?

A. 저는 ‘슛타트’라는 사회인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졸업 후에 서울에 막 올라와서 취준할 때는 일단 취업을 하고 풋살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찾아보니까 다 먼 거예요. 그런데 한 2~3주 공부하다가 ‘아 이건 내가 더 미칠 지경이다’ 싶어서 결국 한 시간 거리 동호회에 들어갔죠. 여기서 재미있는 건 모든 사람이 다 한 시간 거리를 들여서 운동에 와요. 그래서 그때는 제가 열정이 엄청나게 넘치는 줄 알았는데, 이 슛타트라는 동호회에서 사람들이 쏟는 시간이나 풋살을 위해 자기의 큰 부분을 내려놓는 걸 보고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Q. 최주연 선배님에게 풋살이란?

A. 풋살이란 꾸준함의 힘을 알게 해준 좋은 친구다. 어떤 걸 잘하고 싶을 때 아무리 해도 쉽게 안 느는 것 같고,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포기하는 거고. 저도 가지각색의 일들에서 많이 포기를 해왔어요. 그런데 풋살처럼 이렇게 제 인생에 해보지 않은 큰 도전을 이렇게 오랫동안 해온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졸업 이후로 3~4년째 풋살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고 발전이란 게 계단식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아, 이거 진짜 안 되는데?’ 하다가도 어느 순간 딱 늘고, 어느 순간 또 늘고. 주변 사람들이 그걸 또 먼저 인지해서 말해주고 그러면서 ‘내가 어떤 것을 할 때도 꾸준히 하면 못할 게 없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이걸 꾸준히 하려면 주변 사람들이,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격려해주는, ‘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 ‘너 오늘 플레이 이런 게 좋았다’ 때로는 ‘이런 건 보완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인생에 있다면 못할 건 없단 걸 배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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