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개봉한 영화 <귀향>은 개봉 열흘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귀향>은 천진난만한 열네 살 소녀 ‘정민’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나 겪게 되는 고통과 아픔을 보여준다. 쓰러진 정민을 향해 “일어나요. 이제 집에 가야지요”라며 절규하는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영희의 대사는 마음 편할 날 없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픈 삶을 대변한다.
 

▲ 추운 날씨에 담요를 두르고 있는 소녀상. 김남균 사진기자

소녀의 굳은 표정과 움켜쥔 두 손은 일본의 책임회피에 맞서는 분노다. 머리카락은 거칠게 뜯긴 듯한 단발로, 댕기를 하던 조선 소녀가 일제에 의해 부모, 고향과 단절된 모습을 의미한다.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는 맨발로 뒤꿈치를 들고 있다. 간신히, 죽을힘을 다해 고국에 돌아왔지만, 편견과 외면으로 편할 날 없던 마음을 뜻한다.
 위안부 문제의 대표적 상징인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해 일본대사관 앞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소녀상은 최근 철거의 위기를 겪고 있다.
 
피해자 동의 없는 한일합의
작년 12월 28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한일합의 당시, ‘불가역적(不可逆的)’, 즉 위안부 문제에서 앞으로 한국은 일본에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조항이 들어갔고, 합의문에 “한국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관의 안녕∙위엄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되고 있는 점을 인지한다”라며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힌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같은 입장은 “소녀상 문제는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일로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던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문제가 깊어지자 한국 외교통상부는 “일본의 우려 표명이 있었고, 우리 측은 관련 단체와 협의해보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면 된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본 아베 총리는 “대사관 앞 소녀상은 이전하기로 합의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10억 엔과 소녀상을 맞바꾼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었다. 위안부 생존 할머니들을 위한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소녀상은 정부가 아닌 순수 민간 차원에서 모금 후 행정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라며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잊지 않기 위한 기림비이자 1992년 2월 1일부터 수요 집회에 참석해 평화시위를 하시는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평화비다”라고 말했다.
 한일합의를 통해 한국과 일본 정부는 공조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픔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 할머니(88)는 “누구 마음대로 소녀상을 그렇게 (철거)하는 거 아니야. 그거는 전 세계에서 다 보는 거야. 그럼 우리가 당했는데도 절대 반대야. 소녀상은 내놓으면 안 돼”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가 깊어지자 청년들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위안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열악한 환경에도 자리 지키는 청년들
소녀상 지킴이들의 농성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시작됐다.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 합의 조건으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의 철거를 내세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발적으로 모인 8개의 청년단체는 한일협상안폐기대학생대책위를 설립하고 ‘소녀상 지킴이’로서 소녀상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기자가 방문한 2월 26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이들의 노숙농성은 오늘로 59일째였다. 추운 날씨에도 청년들의 농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당일은 ‘희망나비’ 소속 대학생 4명(우준호(20), 송윤(21), 원다정(22), 윤희주(24) 씨)이 소녀상과 함께했다. 이들은 소녀상 근처에서 노숙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시민에게 문제를 알렸다. 이들 주변은 경찰의 눈으로 가득했다. 심지어 반대편 건물 안의 창문 틈으로도 경찰의 눈은 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기온은 영하에 다다랐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으며, 주변 경찰 버스와 지나가는 차의 매연으로 공기는 퀴퀴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 대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달 3일 “(영하 10도가 넘어가는 추위 속에서) 지킴이들의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다”라며 “국가인권위위원회가 경찰에 텐트반입 허용을 권고해달라”는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하지만 2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 결과 지킴이들의 생명권이 위협받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실무선에서 결론 냈다”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 1월 21일 경찰은 소녀상 지킴이 8명에 대해 경찰 출석요구를 했다. 농성에 참여한 ‘평화나비네트워크’ 소속의 대학생 8명은 서울 종로경찰서에 출석해 집시법 위반 혐의로 불려 ‘특정 정당에 가입했는지’, ‘참여 단체 목적과 성격이 뭔지’에 대해 조사받았다. 이날 조사를 받은 평화나비네트워크 정수연 간사는 기자회견에서 “한일 위안부 협상 이후 평화의 소녀상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은 올바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했다”라며 “(위안부 문제에) 정치적인 색깔을 씌워 폄훼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라고 밝혔다.
 

▲ 소녀상 앞에 응원문구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김남균 사진기자

시민도 함께 지킨 소녀상
추운 날씨에도 소녀상 지킴이들이 농성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시민들의 격려와 참여였다. 시민들은 각종 핫팩, 음료수, 간식 등을 제공했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하며, 소녀상 앞에서 묵념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대학생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위안부 문제에 공감하며, 소녀상 옆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날 1인 시위에 참여한 김영각(27) 씨는 “이슈가 될 때는 한 번씩 돌아보게 되지만 이슈가 안 될 때는 잊고 사는 게 부끄럽다”라며 “기사 같은 거 접하고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서울에 올라올 계기가 생겨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참여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 소녀상을 방문한 과천 무지개 학교의 정재영(34) 씨는 “외교적인 문제를 떠나 사람이 유린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인 것 같다”라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이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무지개 학교 학생들은 후원함과 응원 피켓을 직접 만들어 소녀상 지킴이들에게 전달했다. 방문한 학생들은 30분 가량 소녀상 근처에 머물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농성장에 함께했다. 소녀상 지킴이 윤희주(24) 씨는 학생들에게 “화가 나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느끼고 배운 것을 통해 할머니들의 힘이 되어 달라”라며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참여를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도 지킴이들이 농성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켜야겠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시민들의 따듯한 응원이었다.

지난 62일 동안 진행됐던 농성은 3∙1절을 끝으로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 3월 들어 각 대학의 개강으로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어려워졌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62일간의 노숙농성을 통해 이들이 지키려 한 것은 무엇일까? 희망나비 원다정 씨는 “소녀상은 할머니들의 삶 그 자체를 볼 수 있는 것 같고, 저 옆에 있는 빈 의자가 저희에게는 크게 다가와요”라며 “저 자리가 우리의 자리이고, 25년 동안 열심히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활동해 오신 할머님들을 위해서 이제는 우리가 저 의자에 앉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약 8~20만 명이라고 한다(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2013년 발표자료 참고). 현재 공식적으로 확인된 238명의 위안부 피해 추정자 중, 현재 생존한 피해 할머니는 44명뿐이다. 피해자들이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한일간의 진정한 합의와 해결책이 필요한 때다.

*긴급구제: 방치하기 어려운 인권침해 상황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즉각 내리는 시정권고 조치.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