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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
윤예준 기자, 김문구 기자  |  kimmg@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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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6  1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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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채윤희
   
▲ 2011년, 원폭피해자들이 일본정부의 배상을 요구하며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다. 사진출처 수유너머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
 
“내일, 모레 다 죽어갈 사람들, 정신이 없어서 자기 자녀 이름도 모르는데 증언을 받아 자료관이라도 만들어서 비치해놔야 역사가 남는데…” 원폭피해자협회 심진태 합천 지부장과 인터뷰 내용 중에 나온 말이다. 현재 공식적으로 등록된 피해자는 2,000여 명, 평균 연령은 79세이다. 많지 않은 수이지만, 이마저도 고령으로 인한 사망으로 줄어들고 있다.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더 는 원폭 피해를 증언해 줄 증인이 사라지는 셈이다.
 
다시 시작된 악몽
 
1945년, 그 당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는 강제노역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밀항해서 거주 중이었던 한국인들이 많았다. 태평양 전쟁의 조기 종전을 위해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3일에 걸쳐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발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때 피폭된 사람들을 원폭피해자라고 한다. 일본의 도발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미국의 원폭투하로 막을 내렸지만, 원폭피해자에게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72년 한국 원폭피해자협회는 원폭투하 당시 두 도시에 거주하던 한국인 수를 기초로 하여 7만 명 가운데 사망자가 4만 명, 생존자가 3만 명이며, 귀국자 2만 3,000명, 일본 잔류자 7,000명 그리고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은 2,000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추정치일 뿐 실제 원폭피해자는 사망자와 생존자를 합쳐 최대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확한 원폭피해자 규모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는 대한민국 해방 이후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2004년에야 국가인권위원회의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 조사’로 원폭피해자 2세에 한해서 피해규모가 제한적으로 밝혀졌을 뿐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원폭피해자 2세는 같은 연령대 국민보다 빈혈 88배, 심근경색 및 협심증 81배, 갑상선 질환 21배로 발병 확률이 높아다양한 질환에 노출되어 있다.
원폭피해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은 “40대 50대에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참 많다. 10세 미만에도 원인 모를 병으로 죽은 아이들이 참 많다. 그 당시는 피폭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 줄 알았다. 그냥 엄마 품에서 젖을 물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았고, 지적 장애와 같은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도 있었다. 합천에 가면 그런 사람들이 많다. 태어날 때에는 건강하게 태어났다가도 성장 과정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다던지 지체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사회생활이나 개인 생활을 하지 못해 부모님이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대를 잇는 심각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한 정부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지난 17대, 18대 국회에서 원폭피해자를 위한 특별법이 발의되었으나 제대로 상정되지도 못하고 폐기됐다. 국민일보 ‘원폭피해자 특별법 왜 지지부진한가’라는 기사에 의하면, 지난 2005년 국회의원 79명이 원폭피해자 진상규명, 원폭피해자 1, 2세에 대한 의료지원 내용을 담은 특별법을 발의했으나 국회 보건위원회에서 “원폭 피해자 1세와 2세 사이의 질환 인과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며 일본에서도 2세에 대해서는 지원이 없다”는 부정적인 견해을 취했고 2007년 4월에도 특별법안을 안건 목록에 넣었으나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아무도 듣지 않는 비명
 
 
한국의 히로시마
 
한국의 히로시마, 원폭피해자가 많이 거주하는 경남 합천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곳에 원폭 2세 환우를 위한 ‘평화의 집’이 있다. 고통받는 원폭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공간과 지원금이 없어 고생하던 차에 2010년 조계종의 지원을 통해 이 장소를 마련했다.
원폭피해자들의 아픔은 대를 이어서 내려오고 있었고 한결같이 정부의 무관심을 원망하고 있었다. 환우회의 한정순 회장은 엉덩이 쪽 뼈가 녹아 없어지는 대퇴부무혈증괴사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녀의 셋째 언니도 같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다. “일본에 대일청구권을 1965년에 해서 한일협정으로 유상무상 5억 불로 받아서,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방위사업 등 국가 기간사업에 썼잖아요. 그것이 국가에 도움이 되었는데 국가가 주인에게 돌려줄 알아야 해요. 국가가 국민을 속이면 됩니까.” 심진태 원폭피해자협회 경남 합천 지부장의 말이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지원받은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자금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는 국가 기간사업에 쓰여, 한국이 10대 경제 강국의 반열에 들어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지 못해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오은정 박사의 ‘한국 원폭피해자의 일본 히바쿠샤되기’라는 논문에서는 한일 양국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 보상 문제는 해결되었고, 이제 보상 문제는 ‘국내 문제’로 넘어갔다고 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따라 원폭피해자들은 1970년도부터 특별법 마련을 위해 진정 활동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실제로 이는 많은 원폭피해자가 일본의 원폭피해자구호정책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원폭피해자들에 대해 ‘국가적 의무’를 행하지 않았다. 1965년 한일협정 과정에서 원폭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를 제외하여 책임을 저버렸으며, 69년간 진상규명과 실태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은 채 방치해 왔다. 원폭피해자들의 사회적 연대나 정치적 활동에도 제약과 감시를 했다.
반면, 일본은 1957년부터 <원자폭탄 피폭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건강수첩 발급 및 의료비 지원을 했으며, 1995년에는 <원자폭탄 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종합적이며 강력한 복지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한국 원폭피해자에 대해선 그동안 해외 거주자에 대한 보상의 의무가 없다는 판결로 일관해 왔다. 한국의 원폭피해자들이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심진태 지부장이 던진 한마디는 그 안타까움을 너무나 강렬하게 보여준다. “일본 강제노역에 모진 고난을 당하고 왔는데 국가가 잘 살면서 우리는 국적이 없는 거예요.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입니까?”
 
“왜 한국사람들이 원폭피해자죠?”
 
사회적 인식의 부재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환우회 한정순 회장은 인터뷰에서 “서명운동을 나가서 서명을 부탁하면 원폭이 떨어진 곳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인데 왜 한국사람들이 원폭피해자라고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지난 2013년, 한국 YMCA의 생명평화센터가 다음아고라에 올린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피해자 후손 지원 특별법 제정하라!’라는 서명운동에도 무관심 속에 목표했던 10만 명의 0.01%인 17명만이 서명했다.
원폭피해자 대다수가 저학력인 것도 원폭피해자들이 권익을 주장하지 못한 이유다. 이들은 강제노역에 의해 일본에 끌려간 후, 조국으로 돌아오자마자 6∙25전쟁을 겪어야 했다. 현대사의 격동기에 교육의 기회를 누리지 못한 것이다. 심진태 지부장은 원폭피해자 중 문맹자가 90%를 넘으며, 자신도 국민학교를 500일도 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그 당시 피폭자의 질병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지 못하여 많은 사람이 그 피해에 대해 경각심이 없었으며, 원폭피해관련정보는 기밀에 속해 미군이 피해보고에 대해 언론통제를 한 것도 사회적, 국가적 무관심에 일조했다.
 
폭음 뒤에 가려진 원폭피해자들의 울음소리
핵발전소가 존재한다면 우리도 잠정적 피해자”
한국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지 않아서 일까? 원폭피해자라는 말을 들으면 한국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국 원폭피해자 협회에 등록된 직접적인 피해자만 2,670명 이며, 그들의 후손들은 3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정부의 지원은 받기 힘든 실정이다. 사회에서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이들. 원폭피해자의 이야기를 경남합천평화의 집 장지혜 사업팀장에게 들어봤다.
Q 합천평화의 집은 어떤 단체인가요?
저희 단체는 2002년 한국인 원폭피해자 고(故) 김형률 회장님께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원폭피해자라는 것을 밝히며 시작됐습니다. 그 뒤에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서 한국 원폭 2세 환우를 위한 쉼터라는 개념으로 시작해 비영리 단체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한국의 원폭피해자에 대한 여론과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8월 6일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관 내에 위치한 위령각에서 한국인 원폭희생자 추모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고요.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합천 ‘비핵평화제’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한국의 원폭피해자를 홍보하기 위한 기사를 제작해서 배포할 예정입니다.
Q 한국에서는 원폭피해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분들은 누구신가요?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가 원자폭탄으로 해방된 것만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일본에 계시던 원폭피해자 분들이 있죠. 원폭피해자 분들은 강제징용이나 굶주림, 생계 때문에 일본으로 간 것이 친일로 왜곡이 됐고요. 몹쓸 병, 문둥병을 가진 사람이라고 낙인이 됐죠. 아직도 전 세계에 핵무기나 발전시설이 존재하는 한 우리도 언제나 피폭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있잖아요. 원폭피해자라는 낙인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이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인데, 한국의 원폭피해자 문제는 역사적, 정치적 배경에서 생겨난 희생자라고 생각을 하구요.
Q 원폭피해자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원폭피해자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이 안돼있어요. 70만명이 피폭 당했는데 10%인 7만명 중 4만명이 사망했고, 생존자 3만명중 2만 3천명이 남쪽으로 귀국, 2~300명은 북으로 나머지는 일본에 계신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에요. 현재 한국 원폭피해자 협회 기준으로 2670명의 원폭 피해자 1세분들이 등록돼있고요.
Q 일본에서는 원폭피해가 유전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원폭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많이 논란이 되는 것이 2세문제인데요. 지금 원폭을 투하한 미국이나 당사국인 일본에서는 원폭피해의 유전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잖아요. 한국정부도 그 입장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실제로 동식물 실험에서는 피폭이 유전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증명이 됐고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피해 연구를 독점적으로 하고 있는 일본의 방사선 영향연구소조차도 원폭피해가 2세에게 유전적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지금 2세문제를 인정하는 순간 일본에서는 자국의 2세문제, 전 세계적으로 원폭피해자의 피해보상문제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고요. 그래서 이것을 증거도 없으면서 유전이 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죠.
Q 한국정부의 지원은 없었나요?
한국정부는 처음에 일본에서 피폭자 건강수첩을 소지한 원폭피해자들에 대해서 지원을 하고 있었는데요. 1990년부터 한일양국이 40억엔을 각출해서 원폭피해자 복지기금을 조성했습니다. 이게 2008년에 고갈이 돼서 2009년부터 한국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있어요. 현재는 의료비나 진료비, 종합 검진, 장례비, 그리고 치료 지원비, 건강상담비용을 지원받고 계신데요. 이것도 치료비 상한선이 존재하구요. 그 다음에 원폭피해자 복지관이 있는데 복지관도 정원이 11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2세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의 유전성이 없다는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는 지원이 없습니다. 2011년에 경남에서 원폭피해자 지원 조례가 통과돼서 지역자치단체 최초로 원폭피해자와 2 • 3세에 대한 지원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그래서 2013년에는 8개월간 조례에 근거해서 원폭피해자 1 • 2 • 3세의 실태조사를 실시했고요. 올해에는 국내에 계시는 원폭피해자를 대상으로 합천에서 복지프로그램과 심리치료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역시 지역자치단체가 지원하다 보니 예산문제가 걸리긴 하죠.
Q 사회적 인식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돼야 할까요?
원폭피해자 문제는 과거나 역사문제도 아니고 특정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고, 세계의 위험성에 대한 문제고, 인권과 생명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피폭을 당한 1세분들의 평균연령이 79세고, 이들의 자녀인 2세 환우분들의 평균연령도 40~50대가 됐습니다. 이들한테 남아있는 시간도 많이 없고, 더 늦기 전에 원폭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기고, 이들을 위해서 지원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마지막으로 한동대 학생 여러분들께서도 한국의 원폭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많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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