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떠났을까

인간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간다. 태어남과 동시에 가정이라는, 사고를 하고 사회성이 생길 때쯤 학교라는, 자립성을 갖출 때쯤 직장이라는 울타리 속에 살아간다. 만약 자신의 선택으로 울타리를 떠나 내 스스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길 잃은 어린 양이 될까. 울타리 넘어 그 뒤엔 무엇이 있을까. 지옥일까 아님 또 다른 세상일까. 우리는 왜 떠나고 싶어 할까.

           "Fence

           울타리

           a structure that divides two areas of land, similar to a wall but made of wood or wire and supported with posts (출처 – Cambridge dictionary)

두 구역을 나뉘는 구조물, 담과 비슷하나 나무나 철사로 고정되어 기둥으로 지탱하는 것.”

펀(프랜시스 맥도먼드)는 가장 소중했던 남편을 여의고 남편과 함께했던 집과 물건을 팔아 차를 개조해 도시와 사회를 벗어나 유랑 생활을 하는 노매드가 되었다. 인적이 없는 넓은 들판은 화장실이 되었고 캠핑장은 그녀와 차가 쉴 곳이 되었다. 이 험난한 시작을 펀은 ‘선택’한 것이다. 펀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선택의 책임이 그녀에게 축복이 될까. 펀은 노매드가 되기로 한 선택으로 인해 House를 떠났고 그 선택은 Home을 찾기 위함이었다.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 Not the same thing right?”

영화 '노매드랜드'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영화 '노매드랜드'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돈과 사람, 사람과 돈 그리고 인생이란 불확실성

Amazon

아마존 물류창고는 노매드들이 일하는 곳 중 하나로 영화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일터다. 아마존에서 노매드들은 쉽게 일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존이 노인을 고용함으로써 정부의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노매드들은 가성비 좋은 인력인 이다. 거대 기업 아마존은 노매드들의 특성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다. 아마존처럼 세상은 경쟁을 위해 남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취해 이득을 얻으라 말한다. 이 세상의 논리라면 노매드들은 아마존에게 착취를 당하는 존재이자 House도 없으며 경제적, 자본주의적 패배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점심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모습은 마치 자본주의적 논리 따윈 통하지 않는 미소이다. 개개인의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이자 논리다.

She is a Vanguard

노매드들은 경제적으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시선 안에 그들은 비참한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인생을 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스스로 자존을 찾아내는 사람들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다른 모습으로 살기에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노매드들은 이 시대의 개척자가 되었다.

 

대가에 배신당하다.

노매드들이 개척자가 되기로 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하나의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노매드들은 경제적인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다. 린다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자살 시도를 했었다. 정부의 도움으론 턱없이 부족한 괴로운 살림이 되었기 때문이다. 린다는 12살부터 평생을 일해왔던 사람이다.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다. 열심히 노동한 만큼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기본 논리에 배신을 당한 것이다. 때문에 자본주의의 겉모습에 속아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린다와 노매드들은 엄청난 허탈함과 좌절감에 도시를 떠난 것이다.

2008년 미국과 전 세계는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은 누군가의 탐욕에서 비롯된 알 수 없고 위기가 큰 투자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무리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 땀, 그리고 눈물이 짓밟혔다.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말이다. 즉, 누군가에게 의지해 노동을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2008년 의지하던 사람의 탐욕으로 인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매드들은 본인 인생을 직접 만들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겠다 다짐했다.

 

개척자가 된 이유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차를 주차할 곳을 찾는 것, 화장실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고 겨울의 살벌한 추위는 마음까지 얼어 붇게 한다.

노매드들이 모여있는 캠프인 RTR로 떠난 펀. 이곳은 커져가는 경제 위기 속 타이타닉 같은 세상에 서로가 돈으로부터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집단이다. RTR에서 펀은 다양한 이유로 노매드가 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참전 용사는 전쟁으로 인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폭죽 소리에 공포를 느낄 만큼 큰 소리가 두려워 도시를 떠나 평화를 위해 떠났다. 전국 여행을 원하시던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받은 충격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떠난 사람도 있었고, 20년 동안 같이 경제계 쪽 일을 하던 직장 동료가 그토록 원했던 요트도 타보지 못하고 죽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일만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퇴직한 사람도 있었다.

각자가 품고 있는 상처를 들어내기란 고통스러운 일이다. 들어낸 상처를 극복해 내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노매드들은 자연과 사람을 통해 그 치유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세속적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떠난 것이 아닐까. 이들은 도망 온 것이 아니다. 각자 품고 있는 의문을 풀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어둠 속 빛나는 탐욕

도시의 야경은 아름답다. 멀리서 봤기에 아름답다.

도시는 인간이 만든 정글이다. 자본주의라는 낭만 있어 보이는 시스템이 문명인들을 속였다. 도시의 밤은 인간이 빛이라 여겼던 탐욕으로 밝혀진 것이다. 자연과 도시엔 생존 법칙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도시의 생존 법칙은 인간이 만들었기에 탐욕으로 가득하다. 때문에 고용자들은 휘둘린 삶을 살아가게 된다. 노매드들도 그랬다. 그래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난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곳. 도시의 관점에선 빈민촌이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이 진짜 사회적인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도시에선 경쟁에 패배하면 죽지만 야생에선 스스로 살아남는 방식을 찾지 못하면 죽는다. 노매드들이 각자의 길을 개척하는 이유다. 나만의 길을 떠나는 것이 인간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에서 피 터지는 경쟁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돌 같은 인생

펀이 돌무덤에서 흥미롭게 본 것은 돌과 매우 닮아 있는 본인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돌은 지역과 시간에 따라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자랐는지에 따라 사람의 정체성이 확고해진다. 지역, 환경, 세월이 사람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

데이브가 돌무덤을 두리번거리는 펀에게 물었다. “재밌는 걸 발겼 했나요?”

펀이 대답했다. “돌이요!”

돌처럼 변해온 본인 스스로를 펀은 어떻게 보았을까.

인간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돌을 사용해왔다. 사냥을 하기 위해 밭을 갈기 위해 인간의 역사를 보면 유랑 시절부터 정착까지 돌을 사용하는 방법이 달랐다. 이러한 돌의 특성과 쓰임의 시점으로 영화를 본다면 돌이 마치 노매드들의 삶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이브가 펀에게 남긴 쪽지 위에 돌을 올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한 것 마찬가지로 그 상황에서 돌의 쓰임이 데이브가 돌과 같은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데이브의 상황을 의미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선택의 축복

영화는 노매드를 실패한 전형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직접 선택했고 그것이 얼마나 위엄 있는 삶인지 영화는 그려낸다

야생에서 인간의 품이 있는 사회 문명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는가. 노매드들이 힘들 때마다 속으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펀은 인간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두 번의 상황이 있었다. 첫 번째는 여동생의 집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의 집에선 그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사회의 기준에 살아가기 때문에 펀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는 인간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집단이기에 탐욕을 버린 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펀은 여동생 집에 머물지 않겠다 거절한다.

두 번째는 데이브를 만나고 생긴 상황이었다. 아픈 데이브를 돌봤던 펀. 데이브는 아들의 의견대로 아들의 집으로 가기로 했고 데이브는 펀을 집으로 초대했다. 데이브의 가족의 모습은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편안한 침대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쁜 자식.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다. 데이브 아들의 집은 농장과 가축이 있는데 마치 인류가 막 정착하여 농사와 축산을 하기 시작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데이브는 펀에게 같이 집에 머물자 제안하지만 역시 펀은 거절한다.

 

Home sweet home

집을 연상하는 단어는 수만 가지 일 것이다.

펀이 살던 집은 노동을 위한 사택 단지였다. 뒷마당에 광활한 평지가 있는 남편과 함께 살아온 공간이었다. 남편의 직장인 광산 근처의 마을이었다. 회사가 망하고 남편이 죽자 이 공간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었다. 남편이 일을 사랑했기에 마을을 떠나지 못했던 펀에게 기억만 하다 인생 소비한 것 같은 공허함을 주었다. 펀도 사회의 규격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공간에 삶을 꾸려나갔던 것이다.

 

그래도 난

펀은 다시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일한다.

RTR 캠프에서 데이브가 남긴 돌을 불에 던지는 펀. 앞서 언급한 돌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이 행위가 펀에게 큰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 속에서 형성된 본인의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자신을 찾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오랜만에 남편과 살던 집으로 돌아온 펀. 먼지 쌓인 집안 물건들을 보며 펀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젠가 과거를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 대상이 사람일 수도 상처일 수도 있다. 영화는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말한다. 집 뒷문 넓은 평지로 걸어나가는 펀. 다시 마주한 과거의 상처를 뒤로하고 펀은 다시 도로 위를 달린다.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