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신문 271호 ‘[당신이 000이라면] 교내 채식인의 비애..."먹을 게 없어요"’ 기사를 작성하며 교내 채식주의자 최미교 학우(국제어문 17)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신을 ‘삶의 모든 카테고리가 건강하기를, 그리고 무해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최씨는 채식을 용기, 연대 그리고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였지만 활자 너머로 그녀가 고수하는 삶의 철학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이하 내용은 인터뷰 전문이다. 

 

채식식단을 선택하기까지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저는 영어와 국제예술사학을 전공하고 있는 17학번 최미교입니다. 저번 1학기에 국제어문학부 대표로 섬겼고, 지금은 잠시 휴학 중이에요. 삶의 모든 카테고리가 건강하기를, 그리고 무해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Q: 어떤 종류의 채식주의자이고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A: 저는 작년 가을부터 락토오보 채식을 하고 있어요. 락토오보는 육고기과 해산물을 제외하고, 달걀과 유제품류까지는 섭취합니다. 다만 하루에 한 끼 이상은 꼭 비건식으로 먹고 있어요. 올해 10월 4일이 꼭 1년째 되는 날이고, 이후부터는 비건 지향할 예정이에요.

Q: 어떤 이유로 채식주의를 실천하게 되었나요? 채식을 시작하게 되신 특정한 계기나 사건이 있었으면 나눠주세요.

A: 작년 봄학기에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갔어요. 미술사를 전공하는 교환학생이 저 하나뿐이어서 핀란드 현지 친구들하고만 수업을 들었고, 늘 점심을 식당에서 함께 먹었어요. 클래스메이트들이 모두 비건 혹은 베지테리언이더라구요. 북유럽에 비건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좀 충격적이었어요. 식탁 위에 고기나 생선이 담긴 그릇이 제 것밖에 없었어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느껴졌던 기억이에요. 궁금하기도 또 민망하기도 했고...채식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친구들은 한 번도 제게 강요하거나 동참하라는 눈빛을 보내지 않았어요. 마치 편식의 일종처럼 서로의 그릇을 존중해줬죠. 오히려 그런 자연스러운 존중 때문에 채식이 더 궁금해졌어요. 학기가 끝나고 혼자서 유럽을 약 오 개월 동안 돌아다녔는데, 비건 식재료로 요리를 직접 해 먹거나 비건 식당을 부러 찾아다녔던 일, 비건 호스트의 집에 머물렀던 일들이 저에겐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았어요. 불편하지 않고 아주 편안했고요. 무엇보다 즐거웠어요. 전혀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고 제 삶에 채식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긴 거잖아요. 귀국한 이후로 칼럼이나 다큐를 많이 찾아보게 되었고, 채식이 가져다주는 좋은 점들을 뭐랄까 학문적으로 알게 됐어요. 원래 환경보호에 관심이 있었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년 학기 중에 채식을 시작하게 됐어요. 지금은 동물권 보호를 위해서도 채식을 지속하는 중이에요.

Q: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바뀐 점은 무엇인가요?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생긴 삶의 변화에 대해 나눠주세요.
A: 우선 섬세해져요. 꼼꼼해진다고 해야할까요. 이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장을 보거나 편의점에 가면 가장 먼저 성분표를 확인해요. 생각보다 많은 곳에 육고기나 해산물이 들어가거든요. 과자, 시리얼, 젤리, 소스, 국물류 등 신경 써서 살피지 않으면 모르고 섭취하게 되니까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가 먹는 건데 정작 우린 스스로가 뭘 먹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요. 이제는 적어도 내가 무얼 먹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스스로를 돌보고 아끼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또 미각이 굉장히 섬세해져요. 밖의 먹거리들이나 가공식품들을 먹을 수 없으니 직접 해 먹거나 원물 그대로의 상태로 섭취하는 일이 잦아지니까요. 제약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새로운 기회이기도 해요. 재료 그대로의 순수한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거든요. 특유의 향부터 미묘한 달큰함, 쌉싸름함, 시큼함 등 식(食)에 예민해지죠. 또 대체식품이나 채소의 아주 다양한 쓰임-템페나 콜리플라워, 곤약 등-도 경험할 수 있고요. 가볍고 건강한 것들을 많이 먹으니 소화도 잘돼요.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저 자신의 성장이에요. 어떤 선택의 기로에 있어서 늘 스스로를 우선으로 고려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자연과 동물이 제 최우선이 됐어요. 그렇게 내린 선택은 결국 제가 가진 신념을 지키는 일이기도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존재를 위한 선택이 결국 저를 위한 선택이 되는 거죠.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한 순간의 노력과 절제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다른 생명을 위해 나를 조금 덜어내고 양보하는 일은 어쩌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사실 저를 더 크고 높은 곳으로 데려가줘요. 더 많이, 더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게요. 그 끝에는 더 나아진 제가 있고요.

Q: 당신에게 ‘채식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자신만의 음식철학을 갖고 계신가요?
A: 용기고, 연대고, 사랑이에요. 무엇이든 변화를 시작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죠. 그렇게 선택해서 시작하게 되면 내 주변을 둘러싼 것들-환경과 동물-과 연대하게 돼요. 그들이 아픔 없이 온전할 수 있도록, 같은 자연의 일부로서 개인이 할 수 있는 만큼요. 누군가는 페스코로, 누군가는 락토오보로, 누군가는 비건으로요. 그렇게 쌓인 노력과 시간들을 저는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내가 아니라 너, 너뿐만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게 되는 일이고, 그 일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생명을 향한 마음이니까요. 음, 그리고 저는 ‘WAWWE’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We Are What We Eat. 유명한 경구인데요.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 그 자체라는 말이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것들로 제가 채워졌으면 좋겠어요. 아픔이 아닌 평화만으로요. 좋아하는 인플루언서 분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몸이 무덤이 아니라 정원이길 바라요.

▲사진제공 - 최미교 학우
▲사진제공 - 최미교 학우

쉽지 않은 캠퍼스 내 식사시간


Q: 재학 당시 캠퍼스에서 어떻게 식사하셨나요? 특히 기숙사 거주를 했다면 특별히 더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A: 솔직히 챙겨 먹기 굉장히 힘들었어요. 외부거주를 하면 편했을텐데, 저는 국제관이 아닌 기숙사에서 살아서 조리시설이 없었거든요. 락토오보로 시작한 것도 기숙사에 살아서였어요. 냉장고를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통 하나를 서너 명씩 쉐어해서 사용하다 보니 불편했고요. 아무래도 취사공간이 없으니 원물 그대로를 섭취하는 일이 잦았죠. 바빠서 장을 보러 나갈 수 없어서 저는 주로 과일이나 채소를 배송시켜서 먹었어요. 고구마 한 박스를 사다 놓고 전자레인지 용기에 넣어 익혀 먹거나 과일, 쌈채소, 견과류, 구운계란이 보통의 메뉴였어요. 기분 내고 싶을 때는 인브리즈에서 샐러드를 시켜 먹었고 맘스카페 과일컵도 자주 사 먹었어요. 나중엔 본가에서 반찬을 가져오기도 했고요. 항상 직접 찐 고구마를 들고 다녀서 별명이 고구마였던 기억이 나요.


Q: 교내 채식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준 적이 있나요? 공동체 활동 시 불편한 점은 없으셨나요? 어려웠던 점들에 대해 나눠주세요.
A: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기가 쉽지 않아요. 한식은 멸치육수나 젓갈 등을 많이 사용해서 논비건(non-vegan)인 음식이 많아요. 양식, 일식, 중식은 말할 것도 없고 샐러드 샵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지 않죠. 채식을 지원해주는 식당이 거의 없으니 샐러드를 먹지 않으면 직접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학기 중에 바쁘다 보니 도시락을 만들기도 어려웠어요. 자연스럽게 밥약, 밥고를 덜 잡게 되고, 잡더라도 주로 기숙사 안에서 먹게 되더라고요. 사실 이런 개인적인 관계는 조율하기가 비교적 수월한데, 공동체 활동은 조금 더 까다로웠어요. 한동은 공동체 활동이 특별히 많아서 더 어려웠죠. 그래도 최대한 모든 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려고 했어요. 먹는 메뉴만 다를 뿐 밥상 위 대화는 똑같이 쉐어할 수 있잖아요. 같이 밥을 먹을 때는 제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가져와서 먹었어요. 바비큐 파티를 할 땐 채소 씻는 걸 도와주거나 잔일을 거들어주면서 팀원들과 시간을 보냈고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절 많이 배려해줘요. 행사 때 채식 도시락을 따로 주문해주거나, 채식인도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준비해주고, 일부러 함께 채식 식당을 가주거든요. 공동체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다고 느꼈다면 채식을 지속하기 어려웠을거에요. 오히려 저를 존중해주고 배려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자칫 힘들 수 있는 상황을 유연하게 넘길 수 있었어요. 덩달아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도 꽤 많아요. 채식에 관한 대화도 자주 하고요. 

▲사진제공 - 최미교 학우
▲사진제공 - 최미교 학우

공존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기를 바라며


Q: 교내 채식주의자들을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A: 구체적인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면, 식당 및 카페에 채식 옵션이 제공되었으면 좋겠어요. 육류 대신 두부를 사용한 요리라던가, 우유 대신 두유를 사용한 음료라던가요. 메뉴판에 채식여부 표시도 함께 제공되었으면 좋겠고요. 비건이다, 락토다, 페스코다, 메뉴 옆에 써놓으면 구분하기 훨씬 쉬울 테니까요. 이건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지만 해외학생들을 위해서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는, 채식주의자가 집단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길 바라요. 편식하는 사람을 보고 특이하거나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요. 앞에서 말했던 채식 옵션 제공 등이 하나의 돌다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눈이 익숙해지면 다음에는 생각이 익숙해지고, 이어 매일의 생활까지 그 익숙함이 잘 스며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알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컨텐츠를 지속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의식함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덜 생소하고 덜 낯설게 느낄 수 있게요. 그리고 비건모임이 생긴다면 전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이에요. 


Q: 교내 채식주의 관련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A: 학교 차원에서 눈에 띄는 채식관련 편의 지원이 있으면 가장 빠르지 않을까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메뉴판에 채식여부 표시 같은 거요. 기후변화나 동물권을 위해 노력하시는 채식 운동가 및 인플루언서 분들을 초청해서 강연을 들어도 좋고요. 채식의 밤같은 비건 페스타를 열어서 논비건들이 비건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기사를 통해서 채식에 관련한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만약 교내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려는 학우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A: 하나, 자신에게 맞는 영양제를 잘 챙기세요. 둘,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해질 필요 없어요. 셋, 스트레스 받으면서 지속하려고 하지는 마세요. 넷, 연락 주세요. 같이 밥 먹어요!


Q: 채식주의자로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해주세요. 
A: 채식의 세계는 등식이에요. 나에게 적용된 뺄셈이 상대에게로 넘어가면 덧셈이 되거든요. 내게 무언가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일은 살면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개인에서 눈을 들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작은 목표부터 출발해서 조금씩 시도해 보세요. 저도 완전 비건으로 천천히 옮겨가는 중이에요. 언제까지 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연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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