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윤락여성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는가 아니면 업주들의 강요에 못 이겨 참여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설령 업주들의 강요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사회적 상황을 감안하면, 그들이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기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개인이나 집단이 의사표시를 하거나 이해관계를 주장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현상이며 우리사회가 민주주의를 향해 매우 큰 진보를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인가를 생각하면 당혹감을 감출 길 없다. 행정수도이전,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폐지, 성매매 금지, 언론개혁, 사학법 개정 등 정부가 어떤 개혁법을 입법하려하면 그 법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집단들이 예외 없이 반발하고 나서기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개혁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큰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소리가 다양하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부에 의해 결정된 정책이나 국회에서 통과된 법이 반대자들에 의해 거부되기 때문에 어떠한 유효한 결정도 내릴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현상의 책임이 국민대중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집권세력이나 국민의 대표가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현명한 정책을 내놓는다면 국민들의 반발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적으로 수준 높은 민주주의는 국민대중뿐만 아니라 정치세력 모두의 의식 수준이 향상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을 놓고 사회의 의식이 향상될 때 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데 우리사회의 고민이 있다. 이럴 때 대안은 형식적인 절차만이라도 충실히 따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정부나 집권당이 추진하는 일이 맘에 안 들더라도 일단 국민의 다수에 의해 선출되었고, 임기가 보장된 이상 임기동안 소신대로 정책을 추진하도록 일임하는 것이다. 물론 토론을 통한 개선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면 토론도 서로 간의 입장차이만 확인할 뿐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는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것 같다. 따라서 어느 정도 토론한 후에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수의 결정에 대한 심판은, 지금처럼 사사건건 시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당의 임기가 끝난 후에 실시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반독재 투쟁의 경험이 있고 얼마 전에는 다수당에 의한 대통령탄핵 결정을 국민의 힘으로 무력화시킨 전례가 있다. 따라서 지금의 소수당인 야당도 여론이나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중도 하차시키거나 정부의 결정을 번복케 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거에 의한 정부의 심판이 불가능하거나 집권세력이 헌정을 유린하려 할 때나 정당화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지금은 내용이 불만족스럽더라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해 나가야할 때이다.

윤선구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