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 신문이 어느덧 100회 특집호를 낸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1995년 겨울 방학 내내 준비하여 한동 신문 창간호가 처음으로 인쇄기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회 한 회가 해산하는 수고처럼 쉽지 않았을 텐데, 어느덧 한동 신문이 100회 특집을 발행하게 되었다니, 그간 세월 동안 여러 주간 교수님과 후배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창덕궁의 다래나무는 대략 600년, 향나무는 700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합니다. 나무로 쳐도 적지 않은 세월을 자랑하는 이 나무들은 창덕궁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로서 그 문화적 보존 가치가 높은 나무들입니다.
한동 신문을 생각하면서 저는 이런 고(古)나무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스란히 이조 왕조 500년의 그 유구한 역사를 함께 지내온 이 나무들처럼, 한동 신문도 지난 한동의 10년 넘은 세월을 함께한 동반자였음은 누구도 부인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에 더 나아가 이런 옛나무들이 갖는 미덕을 한동 신문이 가졌으면 하고 바랩니다.
첫째, 한 시대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방향자 역할을 하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산 속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사방을 둘러봐도 비슷한 풍경일 때에도 익숙한 고목처럼 반가운 것은 없습니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그 나무를 통해 쉽게 우리는 우리의 위치와 방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동 신문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좌표를 알려 줄 수 있는 신문이었으면 합니다.
둘째, 뿌리 깊은 나무일수록, 오래된 나무일수록 바람에 쉽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동신문이 쉽게 요동하지 않는 중심과 근성을 갖는 신문이길 바랍니다. 역사의 풍광 속에서도, 민족의 시련 속에서도, 문화적 세속화의 거센 도전에도 올 곧은 사상을 지켜낼 수 있는 지조의 신문이길 바랍니다.
셋째, 크고 오랜 나무 일수록 많은 사람이 깃들 수 있는 자리를 양보하는 법입니다. 또한 보듬을 사람을 가리지 않는 법입니다. 고목이 다양한 층의 여러 사람을 보듬어, 그들로 하여금 쉼과 안식을 갖고 다시 떠날 길을 열어 주듯, 한동 신문도 그러한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판에만 능하여, 아무도 모여들지 않는 앙상한 나무가 되기 보다는 늘 대안을 생각하는, 하나님과 사람을 함께 생각하여 저들을 살리는 그러한 나무가 되었으면 합니다.
넷째, 오랜 나무일수록 뿌리가 깊어 홍수 때는 물을 많이 머금었다가 가뭄 때는 그 물을 내 놓는 법입니다. 저만 살지 않고 남을 살리는 사랑과 생명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저는 한동 신문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 할 수 있는, 가뭄의 때에는 빗줄기 같은 비전의 제시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생명을 퍼뜨리는 저력 있는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5병 2어의 정신을 행하는 생명의 나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래된 나무는 단순히 고목(古木) 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가진 높은 이상과 사명은 그것을 고목(高木)이라 하기에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동 신문이 이 시대의 고목(高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한동신문 100회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동신문사 1대 편집국장 김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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