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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영길 초대총장을 기리며
한동대학교학보사  |  hgupress@handong.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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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1  15: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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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30일 주일 새벽 세 시, 기독교 계 큰 별 김영길 한동대 초대 총장님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사흘간 5천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그의 빈소를 찾아 한결같이 진심 어린 애도와 존경의 모습을 표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김영길 총장은 우리에게 비전과 사랑을 남기고 떠났다. 강단에 설 때마다 “알러뷰, 갓럽슈(I Love you; God loves you)”로 학생들에게 서로의 사랑을 가르치고, “배워서 남주자.”라는 구호로 이웃 사랑을 가르치고, “Why not change the world!”를 외치며 세계를 사랑으로 품도록 가르친 그가 남긴 것은 사랑의 비전이요, 교육철학이었다.


2019년 6월 30일 주일. 그 날은 나에게도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한동에서 개교 이래 교수로 부름 받아 섬기다 올 8월말로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는데, 옛 제자들이 돈을 모아 우리 부부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여서 동남아 모 여행지로 떠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며칠 전 집사람이 몇몇 사모들과 같이 문병을 다녀와서는, “아무래도 이번에는 우리 총장님이 오래 못 견디실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기 때문에 늘 걱정하며 기도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달 전에 예약한 여행일정은 이젠 취소하면 환불이 되질 않는 저가여행사의 여행 패키지였기에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여행과 조문을 둘 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시간적, 물리적으론 가능했지만, 우리의 정서상, 양심상 허락하지 않았다. 고민은 잠시, 우리 부부는 제자들이 마련해준 여행을 포기하고 서울 세브린스 병원에 차린 빈소에 문상을 다녀오고 그 다음날엔 학교에서 천국환송예배와 수목장까지 마지막 가시는 총장님의 길을 배웅하였다. 김 총장님이 적어도 우리 부부에겐 그런 분이시다.


지난 25년간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을 수도 없이 목격하는 기간이었다. 설립자의 사업의부도로 시작된 위기가 교수들의 월급을 미루기도 하며, 교내외의 어려움과 억울한 법정구속까지 초기 10여년의 시련은 눈물과 기도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나날이었다. 세계적인 과학자가 이런 대우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이런 시련을 묵묵히 견디어 냈고 이를 통해 전세계에서 수많은 동역자들이 한동을 위해 기도하며 도왔고 하나님께서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다. 이를 통해 한동이 그저 그런 지방신설대학, 또 하나의 대학이 아닌 지성과 인성과 영성이 결합되고 실용화된 학문으로 특성화된 새로운 하나님의 대학으로서의 명성과 희망의 발전을 하도록 이끄신 것이다.


김 총장님의 리더십 뒤에 분명히 드러난 것은 그의 곧은 ‘믿음의 심지’였다. 한 번 기도하고 결정한 것은 때론 미련하게, 때론 무섭게 밀어붙였다. 경제이론을 무시하고 마구 짓던 기숙사 건축, 감옥에 있으면서도 밀어붙인 로스쿨 개원, 수많은 법정투쟁에서도 굴하지 않는 믿음과 신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동기유발을 부여하는 유명한 캐치프레이즈와 비전을 밤새워 생각하고 제시하던 모습. 그래서 그분은 믿음의 ‘비저너리’(visionary)인 것이다. 그 비전을 말할 때 다소 어눌하고 더듬거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그의 열정과 진심이 드러나는, ‘어눌한 웅변’은 그의 놀라운 설득력의 원천이었다. 또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의 바닥은 어딘지 모를 정도였다.


한동을 거쳐간 동문들은 총장님을 회고할 때마다, 도서관 등 캠퍼스 곳곳에서 불쑥 나타나서 어깨를 도닥거리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며 격려하시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학생을 사랑하고 제자들이 지성, 인성, 영성의 성장을 염원하는 마음을 그릴 수 있다. 비록 교수들에겐 그런 살가운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만날 때마다 빙그레 웃으시며 맞으시는 모습으로도 충분하였다.


내 개인적으론 김영길 총장님을 잊지 못하는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같이 기도하던 순간이었다. 1995년 개교가 되기 이전 아직 학생들의 얼굴도 모르는 상황에서 포항으로 이사 온 첫 교수들 약 20여명이 총장님과 같이 현동홀 4층 기도실에서 가졌던 새벽기도회를 잊을 수가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 첫 교수들은 우수한 학생들이 올 것을 믿고 바라보며 기도했다. 적어도 그 기도를 통해 한동이 수많은 고난에서도 지금까지 견디며 발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2001년 5월 11일 학교 재정과 연관되어 억울하게 법정구속 되어 최대의 시련이 그분을 위시하여 한동 전체에 닥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 총장님은 마치 요셉처럼, 바울처럼 믿음으로 이겨내며 구치소의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오히려 그분의 헌신과 한동의 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기회가 되었다. 거의 모든 교수와 학생들이 경주 구치소에 찾아가 스승의 노래를 부르며 신뢰감과 사랑을 확인하면서 오히려 한동을 후원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붙여 주셨다. 나는 그때 안식년으로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기로 되어있었지만 포기하고 언론에 그 분과 한동대의 억울함과 진정한 모습을 알리는 홍보팀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법정구속 위기 속에서 그분은 부족한 나를 교무처장으로 임명하셔서 그 분을 곁에서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은 이어졌지만 그분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한동과 같이 하였다. 은퇴 이후에도 후원회장으로 최근 숙원이었던 ‘김영길 그레이스 스쿨’을 오픈하기 직전까지 목숨을 다해 한동을 위한 사역을 쉬지 않으셨다. 이제 그의 수목장은 그레이스 스쿨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김영길 초대총장이 가시는 길을 20년 전, 강경식, 권영민 첫 순교자들의 환송예배 때 사용되었던 이사야서 61장 말씀으로 보내드리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남아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 . .(이61:3-4).

 

   
 

 

 

 

 

 

 

국제어문학부 허명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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