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제학 교수를 역임한 조셉 슘페터는 그의 역저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1942)>에서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진보는 “창조적 혁신(creative destruction)” 과정을 거쳐서 전개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혁신의 추진동력은 새로운 제품, 새로운 생산방법, 새로운 원료, 새로운 경영방식, 새로운 시장창출 등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신생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가지고 기존의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이익을 누리게 된다. 만일 이 제품이 기존 제품들보다 우수하다면 기존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의 하락 또는 퇴출 위기에 몰린다. 이렇게 하여 성공을 거둔 기업 역시 더욱 값싸고 새로운 제품을 가지고 등장하는 즉, 새로운 혁신으로 무장된 경쟁자를 조만간 직면하게 되고 혁신을 강요받거나 혁신에 성공적이지 못하면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거나 퇴출될 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제품, 새로운 경영방식, 새로운 시장 등을 만들어 내는 혁신의 주체는 역시 사람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슘페터의 혜안을 통해 국가운영 주요측면에서의 우리국민들이 어떤 혁신을 만들어 냈는지 반추해 보자. 우선 우리나라의 지난 10여년간의 경제, 정치, 언론에 국한하여 검토해보자. 우리 경제에서는 1996년 OECD가입이후 금융대외 개방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기업들이 1997년 금융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당시 30대 재벌중에 대우, 기아, 한보, 고합, 우성 등 무려17개 재벌기업들이 퇴출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기업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제품(예를 들어서 반도체, 휴대전화, IT, TFT-LCD, 선박, 자동차 등)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어와 경제위기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하고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어 내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어떠한가. 정권창출의 기반이 되는 기존정당들이 “거품정당”(bubble party)이라고 불리울 만큼 일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정당들이 채웠다. 그 명분이 선진국가 건설, 민주화, 정권쟁취 등으로 불리우지만 급변하는 정치질서의 변화에 정당들이 기존정치질서 혁파에 동원되었고 그 과정에서 기초가 튼튼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가고 있다. 내년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우리국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 기존의 정당질서가 무너질 조짐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언론을 어떠한가. 기존 종이언론이 쇠락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된 포탈사이트나 인터넷언론가 시대적 아젠다를 결정하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의 언론들이 자신들의 미래상으로 연구할 만큼 선도적이다.

이제 가까운 동아시아 나라들의 국가운영을 혁신 차원에서 비교해 보자. 한중일 세나라에서 경제, 정치, 언론 세가지로만 보아도 우리나라가 가장 혁신적인 나라라고 자부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의 국영기업 체제와 일본의 자이바츠 체제에 비해 훨씬 더 유연하고 강고한 혁신 기반을 우리 국민들은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서 2004년도 삼성전자 일개회사의 영업이익이 일본 소니, 도시바 등 10대 전자회사들의 영업이익 합계 보다도 많았다). 정치적 민주화와 언론의 자유도 측면에서도 중국과 일본에 우리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고, 일본의 정치가 얼마나 후진적인 구조를 즐기고 있는지는 조금만 들여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당분간 양국 모두 이러한 모습에서 크게 변화하기가 어렵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의 언론은 공산당의 테두리를 충실히 지키고 있고, 일본의 언론들은 자민당과 관료체제의 지침을 순종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한경쟁시대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양시킬 혁신의 토양을 기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좀더 시야를 넓게 보자. 이제는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 저서에서 한국의 사례를 경제발전의 성공적 모형으로, 정치발전의 모범으로 다루지 않으면 즉 성공적인 혁신의 나라로 다루지 않으면 온전한 저서 축에 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향후의 경제발전상에 대해서도 메릴린치, 도이체방크, 살로만브러더스 등 세계적인 기관들이 우리경제가 혁신의 결과로 2020년이 되면 세계 7-8위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과의 통일이라는 혁명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서도 말이다. 동남아, 동구권, 남미 등에서 우리의 경제발전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이미 진부한 사실이다. 우리의 정치와 언론도 현재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혁신을 강요받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역동적 태도 뿐만 아니라 외국의 관심도 이러한 발전에 분명히 긍정적인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차기 UN 사무총장에 반기문 외교장관이 내정된 것도 이런 측면의 국가발전에 중요한 획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지 한국 역사 5천년 가운데 국가발전의 각 영역에서 혁신의 가능성이 강력하게 우리를 감싸고 있던 적은 없을 것이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어떤 나라를 건설할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앞으로 어떤 모습의 좀더 혁신적인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 그리하여 혁신의 결과로 세계각국에 어떤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줄 것인가. 중국처럼 패권주의 국가로 주변국가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 일본처럼 시대와 동떨어진 침략시대의 망령을 잊지 못하는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한 선택의 기회를 주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그려면 누가 이 일을 감당할 것인가?

이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눈을 한동으로 돌려보자. 나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한동을 사용하고 준비하고 계신다고 확신한다. 우선 지난 11년간 한동에서 일어난 기적은 세상사람들의 눈에도 최소한 한국대학사회의 혁신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준 것으로 분명하게 비춰졌다. 이미 서울대, 연대, 고대, 이대, 서강대 등의 대학에서 한동의 기적(혁신)을 상대히 모방해 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혁신을 위해 한동을 통해서 한국의 대학사회를 변화시키고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미래세대를 준비시키고 계신다고 해석된다. 나는 여기서 한동에서의 기적(혁신)이 우리나라의 운명에 그 선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전율을 느낀다.

그러면 한동에서 이제 어떤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우리나라에, 그리고 세상에 어떻게 선하게 파급시킬 것인가. 그 답의 출발점은 우리의 죄된 모습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하심을 체험하기 위해 몸서리치며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기적에 동참하기를 눈물로 간구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한동의 구성원이 함께. 하나님 없는 역사는 5천년만에 주신 기회를 중국의 패권주의 아류로, 일본의 침략근성 재현으로 우리의 모습을 전락시키는데 활용하게 만들 것이다. 이미 이러한 징조는 동남아와 동구권 등에서 일부 몰지각한 한국기업인들의 사업에서 못된 근성에서 잘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나님! 한동이 하나님의 새로운 기적에 동참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동이 그 기적의 모판이 되길 바랍니다. 한동의 학생들이여! 지금 바로 옆에 있는 한동의 학우들을 우습게 보지 마라.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창조적 혁신의 동역자요, 새로운 나라와 세상 건설의 동지이다.

안진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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