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여유를 알아?

바야흐로 중간고사의 계절이 왔다. 특히 이번 2006년은 분명히 더 특별한 중간고사 기간이다. 축제를 시작으로 추석까지 연휴 아닌 연휴를 보낸 우리들에게는 더 그럴지도 모른다.
한동 대학생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 이 기간만 되면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끼고 허리는 직각 15도를 벗어 나 있다. 얼굴에는 흙빛(?) 가득하고 웃음이 없어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 같이 여유를 가지자는 것이다. 여유를 가지는 것. 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수많은 연구 결과가 보여 주듯이 사람이 웃을 때에 몸이나 마음 둘 다 건강해 진다고 한다. 하지만 매년 보는 일이지만 우리 학생들은 웃을 여유도 없이 프로젝트, 시험, 과제에 눌려 사는 느낌이 든다. 특히나 한동대학교처럼 좁은 학교에서 특유의 치열함만 보이다간 사람 사이에 멀어지기 십상이다.
여유를 가지자. 웃는 여유도 없이 살다가 학기가 끝나면 또 방학하고 또 개강하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고 대학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가게 된다면 이 얼마나 후회스러운 일이겠는가. 우리가 여유를 컨트롤 해 보자. 우리가 여유를 다스릴 때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커플이 아니어도 좋다. 이 글을 보고 밖을 나가 하늘을 보자. 60억 인구가 다 보고 있는 그 하늘을 보면서 여유를 만끽해 보자.

조원장 (상담사회 03)



양동근의 매력


“Put your hands up!” 창문축제 때 양동근의 공연이 있었다. 사실 난 양동근의 노래 보다는 양동근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 졸린 목소리와 남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외모임에도 뭐가 사람들을 끌리게 했을까?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속에 고복수는 별다른 꾸밈이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그저 진실하게 대할 뿐이었다. 이렇게 대하다 보니 상대방도 덩달아 진실해진다. 이것이 극 중 이나영이 양동근을 좋아하게 만드는 고복수의 매력이다.
하지만 이런 고복수의 매력은 사회에서 항상 반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를 위해 혹은 회사를 위해 진실함을 포기해야 반기는 경우가 많다. 또 진실함만 찾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지거나 사기꾼에게 속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한동에서는 진실함이 무슨 의미인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우리에겐 세상 사람들이 무시하는 그 진실성이란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향해 돌진해야 하는 우리가 지녀야 할 무기다. 그리고 한동은 내가 ‘Honor code’ 아래 양심시험과 정직을 바탕으로 그 무기를 갈고 닦을 곳이다. 그렇지만 막상 현실 속에 내 모습은 현실과의 타협으로 그 무기의 힘을 무시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타협으로 인해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진실의 무기를 닦고자 노력하면 결과에 상관없이 세상의 한 부분은 변해 있을 것이다.

권성현 (국제어문 05)



개척! 정신!

< 개척! 정신! > 6년 전 HanST, 가나안 농군학교의 운동장과 산에서 외치던 구호. 그 구호가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나의 머리 속에 맴돌고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오늘의 우리와 선배들의 모습도 같이 떠올라 민망함으로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한동이 (건물)한 동이던 시절, 허허 벌판의 이 땅에서 ‘맨 땅에 헤딩하기’로 한동을 이루어 온 나의 선배들. 신입생의 어린 내게는 그런 선배들이 존경스러웠고, 돈이 아닌 등의 선배들의 땀과 수고로 가꾸어진 한동이 더없이 소중했다. 그리고 이제 그 선배들은 척박한 세상으로 나가, 거기서 또 그렇게 하나님의 길을 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한동의 name value도 그들의 수고의 열매가 아니던가.
반면에 한동에서도 삶에서도 현실 너머의 꿈을 품고 개척하기보다 어느새 불평으로 안주하며 ‘오늘’,’나’로 급급한 나의 모습이 보여 순간, 앞선 이들에게 미안해진다. 나의 선배가 우리에게 열어준 길처럼 나도 후배들에게 그럴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선배 덕을 보는 것처럼 훗날 나의 후배들도 내 덕을 볼 수 있을까? 과연 10년 뒤의 후배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
01년 대학 등록을 앞두고, 한동의 열악한 환경과 상황을 고민하며 무작정 모르는 선배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 때 답 메일의 한 구절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서 한동을 사는 내게, 세상으로 향하는 내게 하나의 소리가 되어준다. < “청년이 아닌, 늙은이를 내 후배로 두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 나의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후배들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유은실 (국제어문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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