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걷는 밤거리가 좋았다. 유난히 밤 산책을 좋아하는 너에게 나는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너는 개의치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안전불감증이라고 문자를 보내면서도 너를 보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어둑한 밤거리는 여자아이에게 너무 위험하니까, 촌스러운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달랐다. 너를 보기 위해서, 그저 너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불 속에 누워 있다가도 문자가 오면 나는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너는 웃는 모습이 예뻤으니까. 눈은 초승달처럼 휘고 왼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도 명랑했다.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잔뜩 차려입고 나간 밤 너는 산책하는데 옷이 그게 뭐냐며 나를 놀렸다.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약속이 있었다는 서투른 변명을 했다. 실망이나 후회보다는 너의 웃음에 기뻤다. 나는 마주 보며 웃다 걷자며 몸을 돌렸다. 그때 살며시 미소 짓는 너의 입꼬리를 보았다. 눈을 깜빡. 나는 그 순간을 찍어 마음에 담았다. 그 어떤 몸짓이나 소리도 없었지만 그 어떤 기억보다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내 마음 안에는 네 기억들이 꽤나 많이 쌓여있다.

네가 밤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된 날 너의 집안 사정을 들었다. 초여름 한산한 해안도로 위에서였다. 나는 아메리카노, 너는 녹차라테를 마시며 걸었다. 쓰레기통을 찾아 빈 플라스틱 컵을 버린 너는 그 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미웠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밤거리를 위험하다고 말하는 내가 미웠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고맙다고 했다. 위험하다고 말하며 자신에게 달려온 내가 고마웠다고 했다. 너는 네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걷던 날이 떠올랐다. 너는 덥다며 무심히 소매를 걷어 올렸고 나는 그 아래 새파란 멍을 보고 물었다. 너는 웃으며 뛰어놀다가 넘어졌다고 했다.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너를 보고 나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바보같이, 진짜로 넘어져서 멍이 들었다 생각하고는 너에게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말하던 도중에 네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고 새하얀 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들이 보였다. 애처롭게 떨리는 몸을 봤지만 죄책감에 소심해진 나는, 한심한 난 너를 안아주지 못했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적당한 온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은 나를 대신해 너를 안아주었다. 너는 손바닥으로 눈과 볼을 훔치더니 배시시 웃었다. 후회하며 자책하던 나는 단순하게도 너의 그 모습에 새삼 가슴이 뛰었다. 오히려 네가 나를 향해 다정히 웃어 보였다. 다음에, 다음에 자신이 진짜 위험한 곳에 있을 때 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느 때보다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너는 바보 같다며 평소처럼 웃었다.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은 반달이 되어 유쾌하게 웃었다.

이제 더는 너를 볼 수 없지만 슬프지 않다. 눈물을 흘리다가도 나를 위해 다정히 웃어주던 너를 떠올리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기쁨으로 이 글을 쓴다. 너란 사람을 알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너를 떠올린다. 너를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상담심리 13 문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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