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하
(곡강교회 목사)

신앙의 길은 열어놓음의 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길은 날마다 새로운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면 적어도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주보다 크신 분일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물리적 크기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의 길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신뢰하는 길인데,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측량할 수 없는 넓이와 깊이를 가지고 있을까요? 바울사도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다 로마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2:33) 바울과 같이 깊은 신앙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 오죽했으면 이런 감탄어린 고백을 했을까요?
하나님이 이렇게 크신 분이라면 그 하나님을 알아가는 우리 신앙의 길은 당연히 열린 신앙의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경험과 지식과 우리 자신이 가진 편견에 갇혀 있는 한 더 크고 깊은 하나님을 알아갈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저는 신앙의 길은 열어놓음의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태도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어놓음의 길이어야 할 신앙이 닫힌 신앙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신앙을 진리의 실체이신 하나님을 더 적극적으로 알아간다는 측면에서 열린 길이지만, 그 진리를 수호한다는 데 있어서는 닫힌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에는 진보성과 보수성이 함께 공존합니다. 이것이 조화를 이룬 신앙이 건강한 신앙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닫힘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기의 편견을 지키려 하는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편견이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자기 부인을 요구하실까요? 인간은 자신이 가진 자기 아집, 자기 지식, 자기 경험의 세계에 갇혀서 형성된 자아로 주님을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닫힌 마음으로 주님을 따를 때, 몸은 주님을 따르나 참된 예수를 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의 마음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린 신앙이란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길이며, 우리의 경험과 환경, 그리고 내면의 욕망에 의해서 굳어진 마음을 걷어내어 진리의 말씀 앞에 자신을 백지로 내어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세계를 향해 자신을 열어놓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평생을 통해 이어집니다.
부모님을 막 떠난 청년의 시기는 우리 인생에서, 그리고 신앙의 길에서 가장 큰 확장기입니다. 이때 확장된 내면의 크기가 평생의 크기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의 때에 자기의 고집과 경험에 머물러 닫힌 신앙의 길을 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여러분의 젊은 시절이 자신의 좁은 경험이나, 지식, 혹은 어떤 한 편의 외침에 머물러 있는 닫힌 신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느 한 쪽에 머물러 다른 세계를 향한 귀와 마음을 닫아 버린다면 그만큼 하나님을 알아가고 경험하는 것도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디 닫힌 신앙이 아니라 열린 신앙으로 걸어가는 한동의 청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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