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비규환이었다. 세월호 광장에서 진행된 스텔라 데이지호 추모집회와 이를 둘러싼 태극기 집회. 이 둘의 충돌을 막기 위한 경찰들과 반대편에서 묵묵히 진행되는 예술공연들을 보며 정신이 아득했다. 웹툰의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시위자들 뿐더러 추모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이를 지켜보는 경찰들의 심정. 어느 곳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요즘 흥미롭게 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웹툰이 생각났다.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후에 광화문과 가까운 곳에서 잡혀 있던 다른 촬영일정을 마치고 만난 졸업생 선배의 말이 머리를 울렸다. “너 아이히만이라고 아냐”. 평소 장난기가 심한 선배 중 하나였기에 대충 넘어가려고 했던 그는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안주로 내왔다. <전체주의의 기원>을 적은 한나 아렌트의 또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던 홀로코스트 계획의 실무를 책임진 인물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서에 대한 보고서>는 저자인 한나 아렌트가 실제로 홀로코스트의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에 참여하며 적은 책이다. 선배는 가장 흥미로운 점이 아이히만이 매우 악한 인물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굉장히 평범한 관료라는 점에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논했다고 한다. “아직 밝혀진 바가 확실하지 않지만 세월호 사건 당시에 정부도 비슷하지 않았을까”라고 다시 운을 뗀 선배는 당시 정부의 인물들을 아이히만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선배는 “결국에 그 사람들도 악한 인물이기 보다 그냥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들이고 비판적 사고 없이 행했던 기계적인 행동들이 악이 된 것 아닐까”라며 유난스러운 4월의 진눈깨비를 욕했다.
또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아직 타인이다. 여전히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며 비판적 사고는 겨우내 녹아 내린 눈이 그렇듯이 찾아볼 수 없다. 두려운 것은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대로라면 또 다른 아이히만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체제 속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잃어간다면. 재앙은 타인인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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