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상담심리 14)

4월은 활짝 핀 벚꽃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하면서도, 세월호 참사로 잃은 수많은 생명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희비가 공존하는 잔인한 달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타인에 대한 발견’이라는 주제로 세월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지만, 일부는 “세월호를 아직도 기억해?”라고 말한다. 그들이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상상력’의 부재일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세월호가 자신과 조금이라도 관계있는 일이라고 상상한다면 “이젠 지겹지 않아?”와 같은 무례한 말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서 왜 타인을 배우려고 하지 않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우리가 타인과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타인이 삶에서 겪은 일들은 타인만의 삶이므로 타인이 아닌 나와 상관없는 삶이라고 사람들은 착각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나치에 희생됐던 유대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름과 함께 "Remember only that I was innocent and, JUST LIKE YOU, mortal on that day, I, too, had had a face marked by rage, by pity and joy, quite simply, a human face”라는 희생자의 말이 적혀있다. 이 글을 보며 다른 문화나 배경을 가진, 나와 상관없는 타인이라고 인식했던 사람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같은 사람임을 깨닫게 되면서 타인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처럼 우리가 타인을 배우려고 할 때 중요한 점은 타인이 나와 같은 동등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타인이 같다는 인식으로만 끝낸다면, 우리는 타인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오해로 인해 우리와 다른 타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으며 타인을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타인을 나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나와 다른 존재임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이 겪은 삶의 순간들을 내 삶의 경험처럼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이다. 나의 경우, 세월호 참사는 타인이 겪은 슬픈 사건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나랑 동갑인 친구들이야.”라는 동생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동생이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고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음으로 세월호 참사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와 다른 존재인 타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내가 타인을 인식할 수 있었던 계기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존재인 타인을 인식함과 동시에, 나와 다른 존재인 타인을 발견하고 배우기는 쉽지 않다. 다만 우리는 타인을 인식하고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경청’을 통해 그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타인 또한 우리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린 이 사회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 우리 또한 다른 사람에게 타인이 되기 때문이다.
토머스 엘리엇은 자신의 시 황무지에서 긴 겨울이었던 단단한 땅에서 꽃을 피워야 하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다. 오늘날의 잔인한 달, 4월은 오랜 세월 자신만을 인식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단단한 우리에게서 숨겨져 왔던 타인의 존재를 발견하는 고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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