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동교
(DECITY 학회 / 언론정보 12)

어렸을 때부터 나는 영화와 음악, 미술을 좋아했다. 그것들을 떼어버리면 내 인생에 뭐가 남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이는 내가 그 분야들에 대해 아주 잘 알거나, 관련 직종을 진로로 삼아서는 아니다. 십여 년간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다고 해보자. 그 친구를 빼고서 자신의 인생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마찬가지이다. 말 그대로 ‘좋아해서’ 이다. 그런데 난 늘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원했던 것 같다. 음악과 영화를 주제로 저녁 내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상황, 내가 왜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과 공부 같은 것들을 말이다.
군대를 마치고, 복학을 한 2015년 1학기, DECITY에 가입했다. 무게를 잔뜩 잡아 쓴 면접지원서를 들고, 까만 나이키 져지를 입었던 게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나에게 나름 의미심장한 날이었나 보다. 면접실의 형, 누나, 동생들은 나를 푸근하게 맞아주었고, 금세 긴장의 벽은 허물어져 있었다. 그렇게 DECITY 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학회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긍정적으로 내게 와닿았던 지점은 ‘학회원들과의 대화’ 였다. 한 공간에서 동시에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관객성이라는 측면에서 집에서 혼자 보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영화를 매개로 이어진 우정의 공동체적 행위랄까? 우리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의견을 교환한다. 일정한 시간의 저작운동을 통해 영화를 충분히 곱씹은 후, 정제된 글의 형태로 생각을 옮기길 선호하는 나로선, 3분 만에 즉석요리를 만들 듯 뚝딱 자신의 견해를 논리정연하게 피력하는 학회원들의 능력에 감탄하곤 했던 것이다.
내가 놓쳤던, 특정한 쇼트, 시퀀스가 함의하는바, 전체적인 컨텍스트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포착하는 의견들을 들으며, 타인이 영화를 매개로 구축해내는 세계관을 종종 엿볼 수 있었고, 그것은 커다란 지적 즐거움으로 와닿았다. 대화의 즐거움은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다양한 분야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학회원들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탁구를 치듯 즉각적인 나의 피드백으로 의견의 탁구공이 왔다갔다 할 때,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화학 작용을 일으킬 때, 살아있는 배움의 생동감을 느끼며 나는 환희하였던 것이다.
2015년 2학기부터 1년 동안 나는 학회장을 역임하게 됐다. 그 기간동안 몇 가지 추억이 아로새겨져있다. 펜션을 빌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도 보고, 학회원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 외부거주하는 학회원의 집에서 삼삼오오 모여 조그만 스크린에 집중하며 영화를 보았던 기억. 이러한 추억들이 모두 영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매개로 만들어졌음이 새삼 놀랍고 감사하다.
더불어 영화를 보고 우리가 한 이야기들을 작은 문집으로 만들고 싶어서, 인터뷰하듯 노트북에 우리의 말들을 기록하곤 했다. 아직도 노트북 한켠에 그 시간과 순간이 살아숨쉬는 것 같아 뿌듯하다. 매주 영화 관련 특정 주제에 대해 ppt를 준비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에 대해 발표했고, 다른 학회원이 싸이버펑크에 대해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글을 쓰면서 예전에 했던 활동들이 하나 둘 소급이 되니, ‘아 나름 의미있는 것들을 해왔구나’ 하고 미소가 머금어졌다.
교환학생 기간, 1년의 휴학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이번 학기, 어쩌다보니 다시금 학회장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함께 하게 된 학회원들이 영화에 대한 사랑, 활동에 대한 열의가 넘쳐서 벌써부터 기분 좋은 두근거림으로 가득하다. 이번 학기에는 기회가 닿는다면 학회원들과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여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솔직히 2년 정도 되는 DECITY 에서의 활동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계량적으로 알 순 없을 것이다. 그저 난 영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우정의 시간, 순간들을 보냈을 뿐이다. 다만 서두에 나는 영화와 음악을 빼곤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것과 똑같다. 그 모든 추억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형성하였기에, DECITY와 나를 결코 분리할 수 없고, 학회활동을 하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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