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교내 사안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 개인과 단체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학생대표기구마저 부재하다. 새삼 1970년대 유신정권과 현재 한동대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유신 정권 때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 되지 못했듯 현재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 되지 못해 보인다. 유신 정권이 난무하게 판을 치듯 학교 당국도 제재 없이 질주하고 있다. 유신 정권 때 경제 성장을 위해 노동자들의 고된 삶이 당연시됐듯 한동대에도 기독교 정신 함양을 위해 당연시되는 것들이 참 많다.
반갑게도 이런 상황에서 자치회 후보가 출범했다. 그러나 공청회 때 보인 자치회 후보의 모습은 가히 학생 대표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치회 후보는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자치회 후보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생활관에 한정시키려는 것 같았다. 공청회 당시 자치회 후보는 지진 매뉴얼과 같이 밀접하고 긴급한 사안은 대응하며 대자보 사안에는 대자보를 쓴 학생과 대화하며 학생에게 자치회 후보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자치회 후보가 자신들이 승인하는 것만 밀접하고 긴급하게 여기며 승인하지 않은 대자보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기껏 자신들의 사업과 공약에 필요한 설문조사에만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설문조사 등 자치회가 승인한 사안에 답하는 오지선다 보기보다 훨씬 많고 다양할 텐데 말이다.
자치회 후보는 기준 없는 이분법적 사고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것 같았다. 공청회 당시 자치회 후보는 대자보를 붙이기 위해서는 자신과 반대되는 대자보를 들고 와야 하며 찬성 대자보와 반대 대자보가 나란히 붙어야만 대자보 게시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자치회 후보는 무엇을 향한 찬성인지 반대인지 그 잣대조차 스스로 판단할 거면서 대자보의 내용조차 딱 잘라 찬성과 반대로 나누고 있다. 이처럼 기준 없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니고선 어떻게 학생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하며 이를 학교 당국에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또한, 자치회 후보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보호하고 대변할 수 없어 보였다. 공청회 당시 자치회 후보는 다수의 의견처럼 보이는 소수의 의견은 대자보로 게시되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소수의 의견 하나 보호하고 공론화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전체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편, 공청회 당시 자치회 후보는 한쪽 의견만 올리면 문제가 커지며 계속 싸움이 나고 이는 한동대의 생활관 문화가 아니라고 밝혔다. 발전을 위한 갈등과 싸움은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닌가. 자치회 후보가 바라는 생활관 문화는 무엇인가. 문제조차 제기하지 못하고 갈등이 두려워 침묵하는 것인가.
진정한 학생대표기구가 꼭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 공식 총학생회와 자치회가 구성되지 않았다. 마땅히 학생대표기구라면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학교 당국에 전달하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보호하고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부디 학생들의 목소리가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노력하는 학생대표기구가 나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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