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맑은 눈
당신들의 천국
윤예은 편집국장  |  yoonye@hgupres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3.28  00:18:3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이청준 작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나환자의 섬, 소록도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현역 의무 장교 ‘조백헌 대령’이 소록도의 새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그가 새로 부임한 날 밤, 두 명의 나환자가 섬을 탈출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조백헌은 부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탈출 사고의 원인을 찾는데 몰두한다. 그는 탈출 사고를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소록도를 나환자의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신념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조백헌 곁에 그를 시종일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가 있다. 보건 과장 이상욱이다. 이상욱은 소록도를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조백헌의 신념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상욱은 조백헌에게 ‘도대체 그 원장님의 천국이란 누구를 위해 꾸며지는 누구의 천국’인지 되묻는다. 이상욱이 볼 때 소록도는 천국이 될 수 없다. 소록도는 배제의 결과다. 소록도는 ‘정상인’ 사회로부터 배제당한 나환자가 모여 사는 곳이다. 소록도를 천국으로 만들어 아무도 섬을 나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은 결국 ‘정상인’으로부터 완전한 고립, 소외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상욱은 비판한다.
두 번째로 이상욱은 소록도에 선택과 자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천국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상욱은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이라고 말한다. 조백헌이 만들고자 하는 천국은 결국 섬 밖의 사람이 만들어준 천국에 불과하다. 사회에서 배척당한 채 소록도로 흘러들어온 나환자는 선택권이 없다. 선택을 박탈당한 섬사람은 조백헌의 천국을 그들의 천국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선택과 자유와 희망은 박탈당한 채 타자가 규정한 천국을 천국이라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 이상욱은 그건 지옥이라고 말한다. 결국, 조백헌이 가진 천국에 대한 신념을 깨기 위해 이상욱은 정상인임에도 불구하고 나환자들처럼 소록도에서의 탈출을 감행한다. 정상인 이상욱의 탈출은 ‘이곳은 천국일 수 없다’는 몸부림이다.
‘당신들’의 천국은 배제와 획일화를 통해 형성된다. ‘당신들’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철저히 배제한다. 천국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배제, 억압, 존재 부정과 같은 폭력이 자행된다. 모일 수도 없고, 붙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소위 천국이라는 곳에서. 또한,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말을 해야 한다. 그건 천국이 아니다. 그건 파시즘이다. 천국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욱은 섬을 탈출함으로써 소록도가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탈출은 소록도에 가능성을 불어넣는다. 이상욱의 말에 따르면 탈출은 생명을 받고 살아 있는 자의 마지막 자기 증거다. ‘당신들의 천국’을 거부하는 인간의 몸부림으로 소록도의 자유와 존엄은 유지될 수 있다. 지금의 민주주의도 결국 과거 ‘당신들의 천국’에 안주하지 않았던 수많은 탈출자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진짜 비극은 ‘당신들의 천국’에 탈출자도 없을 때 시작된다. 탈출자가 없다면 섬은 아무런 비판 없이, 이곳이 곧 천국이라 믿으며 안주하는 유령만 가득한 곳으로 전락한다. 오늘도 ‘당신들의 천국’에서 섬 변두리에 앉아 탈출자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윤예은 편집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791-708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동로 558 한동대학교 학생회관 102호, 한동신문사  |  대표전화 : 054-260-1241~2  
발행인: 장순흥  |  주간: 박원곤  |  편집국장: 노대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전광준
Copyright © 2013 한동신문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