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나고 있는 오늘 이 하루도, 우리는 죽음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셈이지. 물시계를 비우는 것은 마지막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아니라, 그때까지 떨어진 모든 물방울이네, 그것과 마찬가지로, 최후를 맞이하여 우리가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될 때, 그때만이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세. 다만 죽음을 완결시킬 뿐이지”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세네카 인생론』

‘언제, 어떻게 존엄을 지키며 죽을 것인가’하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3월 9일을 기준으로 1만 1,771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2월 4일에 시행된지 한 달 동안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보건소 및 웰다잉 협회에서 등록한 사람 수이다. 웰다잉을 실천하기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노인에서 청장년층까지 다양했다. 이처럼 잘 죽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죽음을 준비하고 남은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웰다잉에 대해 알아보자.

웰다잉, 가치 있는 죽음을 위한 준비

‘웰다잉(Well Dying)’이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웰다잉은 생명을 의학적 치료에 의존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요즘, 환자들은 차가운 의료기계에 둘러싸여 여러 가지 튜브를 몸에 꽂은 채 죽음을 기다린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경우 계속되는 연명 치료가 오히려 환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음을 직면한 사람에게 어떤 죽음이 더 인간다운 죽음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생의 마무리를 돕는 것이 바로 웰다잉이다.
웰다잉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충북보건과학대학교 사회복지과 오선영 교수의 『웰빙과 웰다잉 그리고 복지』에 따르면 웰다잉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죽음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측면에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신체적으로 기계 장치에 의지해 연명하기보다는 고통 없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해야 웰다잉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정신적으로 두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도움받을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는 환자가 의료 기기에 둘러싸여 무의미한 삶을 보내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필요하다.
웰다잉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목표다. 웰다잉을 위해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은 ▲*엔딩노트 ▲유언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등이 있다. 엔딩노트에는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정리하는 것으로 남은 삶을 가치 있게 준비할 수 있다. 유언장은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가족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남기거나 재산분쟁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통해 죽음의 순간에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샘물 호스피스 선교회 이사장 원주희 목사는 “죽음 자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오는지 모르는 사건이기 때문에 평상시에 유언장을 써놓고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게 살아갈 때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져요”라고 말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임종을 앞둔 상황에 대비해 미리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의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해 두는 서류.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 연명의료결정법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
*엔딩노트: 앞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 적어 두는 노트.

대한웰다잉협회 김태일 포항 지회장 인터뷰

▲대한웰다잉협회 김태일 포항 지회장. 사진제공 김태일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앞으로 남은 삶을 가치있게 살수 있도록, 가족과 주변의 이웃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한웰다잉협회 김태일 포항 지회장을 만나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웰다잉 교육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금년 62세로 대기업 은퇴자로 작은 일을 하면서 좀 늦게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는 사회복지학 박사로서 학부에서 사회복지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우선 ‘죽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8년 전 아주 건강하시고 백 세를 사시겠다고 말씀하시던 선친이 황망히 돌아가신 이후에 많은 회한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죽음이란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지요.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우리는 죽지 않을 것처럼 현실에서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 또는 내 가족에게 다가올 수도 있는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보자 해서 6년 전쯤 우연히 ‘죽음준비 지도자과정’ 강좌가 있어 관심을 가졌고 최근 대한웰다잉협회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깊이 있게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Q 현재 웰다잉 교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대한웰다잉협회의 경우 수강 대상자의 눈높이에 맞춘 여러 가지 형태의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준비’ 프로그램의 경우 죽음 준비 교육의 필요성과 죽음에 대한 이해 그리고 더 나아가 존엄사와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대해 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언장 작성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자서전 쓰기 그리고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죽음을 준비하고 이야기하는 웰다잉 교육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앞서 잠시 애기한 것처럼 죽음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 만나야 하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Q 노인과 청년을 가리지 않고 죽음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나요?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유교적 정서가 생활 속에 많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죽음에 대한 열린 생각이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음에 대한 열린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육기회가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외국의 경우 죽음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자연스러운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어떻게 죽음을 알릴 것인지 고민하지 않게 될 수 있다면 죽음은 더 이상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Q 과거와 현재 사람들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또는 문화에 변화가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도 민간단체 또는 종교단체에서 오래전부터 죽음과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운영 돼 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게 많이 홍보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과 문화가 많이 나아지진 않았습니다만 최근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과 관련한 언론의 홍보 효과가 영향을 미쳐서인지 몰라도 어느 정도 죽음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연관된 장묘문화에 대해서는 과거 매장을 선호하던 것이 화장을 통한 납골묘 목장 또는 공원장 등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Q 최근 본인 의사에 따라 연명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어요. 어쩌면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이러한 제도가 현재 사회 죽음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표현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명의료 결정법은 의학적으로 생명의 시한이 정해져 있는 말기 또는 임종기 환자를 대상으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법적인 문제로 인해 중단할 수 없었던 것을 본인의 희망을 전제로 법적으로 가능하게 해놓은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지 말입니다.

Q 앞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죽음이란 인간의 필연적인 생로병사의 한 과정일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하게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일입니다. 간혹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름다운 죽음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인간다운 죽음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죽음,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다면 인간다운 마무리. 즉,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실을 받아들이고 삶의 한순간 한순간을 좀 더 가치 있고 보람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언제 나에게 불쑥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알 수 없는 죽음을 대비하여 우리가 준비한다는 것은 웰다잉(Well Dying)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웰리빙(Well Living)이 전제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하는 것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성하고 회의할 때 죽음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톨릭대학교 생명윤리연구소 구인회 교수는 『현대인에게 있어 죽음의 의미와 그 도덕적 문제』에서 “죽음이란 죽음의 마지막 문턱에 서서야 마지못해 죽음과 직면하여 생각해 보는 생의 종국이라기보다 모든 생의 국면과 결정에 동참하는 생의 차원으로 다뤄져야 할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앞으로 살아갈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현재 그리고 남은 삶을 더 가치있게 살기위해 죽음에 대해 인지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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