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남 앞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말에 책임질 용기도 없거니와 내가 뱉은 말이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정의와 평등에 대해 말하는 것도 낯뜨겁다. 내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나는 말하지 않는 비겁자와 말만 하는 위선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위선은 미투 운동에도 독처럼 퍼져있다. 지난 신문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2017년 6월 3일 한겨레 토요판을 보게 됐다. 익숙한 얼굴이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윤택 씨였다. ‘블랙리스트 1호’ 예술인으로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그는 인터뷰에서 ‘시민’에 대해 말하고 ‘민주주의’에 대해 말했다. 그가 ‘문화로 싸워’ 지키려 했다던 민주주의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그 민주주의 사회에 여성이 없었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하다. 이윤택 씨가 말한 시민의 범주에도 여성은 없었다. 약자에게 폭력을 자행하는 이윤택 씨가 문화에 대한 국가의 폭력을 비판하며 하는 말들은 껍데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도 마찬가지다. 충남도청 도지사실 옆 ‘도지사가 추천하는 책’에는 <빨래하는 페미니즘>과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가 전시돼 있다. 안 전 지사가 추천한 페미니즘 도서다. 안 전 지사는 3월 5일, 성폭행 사실이 드러나기 11시간 전 충남도청 문예회관에서 ‘남성 중심의 권력 질서와 문화가 가진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 평등, 인권 도정이라는 관점에서 일체의 희롱이나 폭력 그리고 인권의 유린을 막아내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냅시다”라는 말이 안 전 지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인간의 뻔뻔함에도 한계는 있을 거라는 내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미투 운동을 두고 한 마디씩 거드는 인간들도 위선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김어준 씨는 본인의 팟캐스트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미투 운동으로 인해 “이명박 각하가 사라지고 있다”라며 “공작은 맞고, (동시에) 사회운동으로 기회를 살리고, 이 두 개를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에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 공작설을 주장하며, 미투 운동을 공작으로 열심히 이용하고 있는 이가 공작과 지혜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미투 운동에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도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다. ‘지혜롭게’ 미투 운동을 하라는 건 대체 무슨 뜻인가. 피해자들은 MB 구속 전까지 ‘지혜롭게’ 입 다물고 있으라는 말인가. 진보 진영 인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이는 보수 진영이 이를 공작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지혜롭게’ 조심하라는 말인가. 무슨 말인가. 왜 본인의 비논리를 ‘지혜’라는 단어로 퉁치려는가.
추상적인 언어는 위선에 취약하다. 사랑, 정의, 지혜, 정직 따위가 그렇다. 정의 내리기 어려운 단어일수록 사람들은 쉽게 남용하고 내버린다. 모두가 잠든 밤 위선으로 찢겨나간 단어들이 땅에 떨어져 발에 채인다. 나는 그것을 주워담아 지면을 채운다. 위선의 말에 치여 스러져간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오늘만큼은 정말 그들을 말로써 위로하고 싶지 않은데, 내겐 결국 말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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