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안(상담심리 14)

신고제와 허가제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검열의 유무에 있다. 허가를 위해선 관련 기관의 ‘검토’와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허가제의 의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안전을 위한 최소기준을 충족하고 기관의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음이다. 그러나 허가제의 맹점 또한 같은 부분에 기인한다. 결국 허가제는 검열기관의 판단에 의한 일방적 불허 가능성을 정당화하고 이는 개혁과 기술의 활성화를 제한한다. 허가제의 산물은 기존 기준이 명시하는 수준을 이탈할 수 없고, 이는 시대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에 걸림돌이 된다. 기준이 가치중심적일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거나, 구시대적인 가치가 기준이란 명목으로 강요될 수 있는 것이다. 허가제만 존재하고 준수되는 세상에 종교개혁, 독립·민주화 운동 등의 변혁적 역사는 없을 것이다. 이에 임시정부의 전통성과 4/19 학생혁명의 이념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은 모든 국민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며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를 원칙으로 한다.
이제 한동대학교 교내 집회로 논의의 초점을 옮겨오고자 한다. 한동대학교 교내 집회에 대한 현행 허가제도, 즉 검열과 심사는 학생처에 의해 집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처의 검열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비슷한 쟁점이 대두될 때마다 ‘한동의 가치’라는 단어가 자주 기준처럼 오르내리곤 한다. 이는 대개 ‘복음주의 개신교의 전통과 성경해석에 최고 권위가 있는 가치규범’ 정도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필자가 제기하는 의문은 ‘과연 한동-가치가 교내 집회의 검열 기준으로써 정당한 구속력이 있는가?’, 그리고 ‘집회 허가제가 한동-가치의 수호와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의 두 가지이다. 한동대 학생들에게 명시된 기독교적 규범으로써 가장 큰 구속력을 가진 기준은 ‘한동 스탠다드’라 할 수 있다. 모든 신입생은 이것에 동의함으로써 입학이 가능하고,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 일괄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 보기는 어렵다. ‘음주상태, 혼전 성교, 동거 금지’ 등 모든 학생의 위반 여부를 확인하거나 처벌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조항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 ‘시험기간 행사 금지’라는, 명시된 조항이 아닌 사유로도 학생처는 집회를 불허한 바 있다. 이는 교내 집회에 대한 일괄적인 기준의 부재와 동일하다. 이러한 모호성은 허가제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결국 한동대는 기독교적 가치를 건학 이념으로 하는 단체 아닌가?’는 이의를 예상해본다. 필자는 본교가 기독교적 가치를 실천하고 선도하기를 소망한다. 동시에 통제와 검열, 금지의 율법만으로 이를 온전히 실현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개신교의 전통은 구교의 전통에 의문을 갖고 자유롭게 성경을 수용하고 말하고자 했던 자에게서 시작됐다. 역사에서 한동은 어떤 교훈을 얻는가? 항상 일정한 목소리만 들리는 환경보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곳이 가치가 진정 살아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한동대학교는 루터의 학교인가, 아니면 종교재판관의 학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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