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내 단짝 친구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다. 나는 처음으로 책을 읽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됐고 그 친구를 닮고 싶어서 오기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컴퓨터 게임과 친하게 지냈던 터라 처음에는 책을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를 따라 판타지 소설, 시리즈물, 만화책 등 쉬운 책 위주로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책에 익숙해졌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도서부 활동을 하면서 다독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느끼듯 '고전'이라는 것은 수능 언어영역 점수를 높이기 위해 읽어야'만' 하는 고리타분한 책들이라고 생각했다.
한동대에 입학한 후 나는 항상 책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팀모임, 동아리 활동, 공연, 과제, 시험, 팀플 등 자연스럽게 한동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책과는 멀어지게 됐다. 아무리 책을 읽으려고 해도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책과 멀어졌고 군대를 다녀온 후 1년간 휴학하면서 3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한동에 복학했다. 한동에 복학하고 나는 '고전강독학회'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이런 학회가 있는 줄 몰랐는데 히즈넷에서 학회원 모집 공고 글을 보고 바로 지원했다. 고전강독학회에서 처음 읽었던 고전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이다.
알베르 카뮈는 '실존주의'소설 <이방인>을 통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페스트>는 알제리 해변의 작은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퍼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의사 리유와 리유를 돕는 타루, 시청에서 일하는 그랑, 코타르, 랑베르, 파놀르 신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여 페스트에 대해 각자의 방식대로 대처해 나간다. 하지만 대부분 시민은 그저 시에서 매일 몇 명이 죽었는지 하는 소식을 들으면서 페스트가 끝나기를 바라며 매일 밤 술에 취한다.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자기 자신들의 현상에 진저리가 나고, 과거와도 원수가 되고, 미래마저 박탈당한 우리들은, 마치 인간적인 정의나 증오 때문에 철창 속에 갇힌 신세가 되어 버린 사람들과 똑같았다"

2015년 우리나라에도 '메르스 사태'가 있었다. 매일 뉴스에서는 몇 명이 메르스에 걸렸으며 죽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손을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쓰라고 당부할 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아마 '나는 메르스에 걸리지 않겠지...' 생각하며 백신이 만들어져 이 사태가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1940년대의 '오랑' 그리고 2015년의 '대한민국', 책과 현실이라는 그리고 시대라는 차이가 있지만, 책에 등장하는 인간 사회의 모습은 현실 세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혀 다르지 않았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을 누구든지 하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사회가 없을 것이다.”

학회 모임에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정말 간단한 생각이지만 이 말은 나에게 인상 깊게 다가와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로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이런 일이 아닐까? 만약 혼자 페스트를 읽었다면 ‘아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이런 전염병이 퍼지면 어떡하지?’하고 잠시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생각을 누군가와 나눈 후 나는 앞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박찬호(생명과학,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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