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먹는 나무-프랜시스 하딩

속물은 타인에게서 자신을 찾는 사람이다. 속물 특유의 냄새가 있다. 그러나 속물은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자신이 속물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속물은 공공의 것을 개인의 것으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때는 더한 속물의 향기가 발산한다. 제아무리 공공의 향수를 사다가 뿌려도 조금 지나면 속물의 향기가 더 진해진다. 속물은 향기를 뿜어내고 이내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의 맛은 쓰디쓰다. 그것은 속물이 추구한 그 허망함과 그가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의 맛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자연의 원리를 알아내는 진실의 추적이라는 가치를 추구해온 분야다. 이 분야의 종사자들은 자신의 발견이나 발명의 최초성에 큰 의미를 둔다. 그래서 출판 아니면 파멸(publish or perish)이라는 구호가 있다. 이 강박적 상황은 매 순간 타자와 경쟁하고, 타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하게 한다. 가장 공정하고 엄밀해 보이는 과학기술 분야조차 공공성을 빙자한 타자의 횡포와 타자를 향한 한없는 열망이 판치는 속물적 세계를 부인할 수 없다.
18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거짓말을 먹는 나무>는 그런 면에서 눈에 보이는 속물과 다른 차원의 속물을 잘 드러내는 소설이다. 에라스무스는 목사이면서 동시에 과학자인 사람이다. 에라스무스 목사는 성경을 지지하는 화석을 발견해서 과학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교회를 건져내고자 한다. 그는 우연히 식물 표본을 살려냈는데 그 식물은 거짓말을 먹고 자라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를 먹으면 환상 가운데 거짓말의 진실을 알게 해준다. 목사는 화석을 조작하여 네피림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는 학계의 스타로 떠올랐고, 거룩한 목사이며 동시에 고매한 학자로서 성경의 권위를 수호하는 참된 지식인의 표상이 되었다. 그는 거짓말을 먹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며 진화와 창조의 진실로 다가간다. 그러나 그의 조작된 화석의 비밀이 들통나고 하루아침에 가장 추악한 사기꾼으로 몰리게 된다. 14세의 감수성이 예민한 딸을 둔 목사의 가족은 세상의 비난을 피해 외딴섬으로 이주를 하고, 어느 날 목사는 시체로 발견된다. 목사의 영리한 딸 페이스는 아버지의 비밀 노트에서 아버지가 키우는 식물의 비밀을 알게 된다. 페이스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고 성장한 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아버지 죽음의 실체에 접근한다.
소설은 빅토리아 시대의 다양한 속물들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런 생활형 속물보다 더 큰 속물은 바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양심을 팔아먹는 목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속물의 냄새는 너무나 특이해서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사치하지 않으며, 진지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고민하고, 대부분의 일상에 정직하다. 그러나 이미 그의 영혼은 타자에게 팔려있다. 과학은 가설이라는 거짓에서 출발해서 진실로 다가가는 학문이다. 그러나 종종 쉬운 성공과 찬사를 꿈꾸는 속물적 유혹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단호하게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타자에게 비추어진 자기 자신이 아니라 진실 앞에 비추어진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정받는 사람은 그 인정을 배설물로 여겨야 할 것이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무명의 기간을 감사함으로 버텨야 할 것이다.


한동대 기계제어공학부 이재영 교수
(포스코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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