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습니다. 이 땅에서 94년을 사셨으니 장수하신 셈이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버지의 가심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남다른 효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연세가 많으셨으니 늘 준비하는 마음이 있었지요. 새벽에 혹 전화벨 소리가 울려 놀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떨까? 어떤 마음, 생각이 들까?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지? 여러 생각이 많았지만, 사실 아직까지 마음과 감정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한 세대가 지나가고 또 한 세대가 다가옵니다. 여러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데, 일상은 아무 일 없었던 듯 변함이 없습니다. 죽음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죽음을 바라보며 성도로서 갖는 지혜가 있습니다.
요즘 주변에서 들리는 소식은 우울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얼마 전 끝난 주요 교단의 총회를 보면 다른 시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습니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아니 비판하는 소리에 귀를 닫은 것 같습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의식보다는 마치 사회의 계도해야 한다는 이상한 자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한 대형교회의 세습 여부에 많은 상식적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그러한 반지성적, 반 상식적 논의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그 자체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한 교회의 교인이 장관으로 지명받았다가 낙마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론으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의 낙마가 반드시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교회가 사회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성도가 교회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따르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인을 주는 것 같습니다. 신앙은 전수되는 것이라고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의 세대에서 아들의 세대로, 어머니의 신앙이 딸에게 전수된다는 의미이지요. 중요한 것은 전달의 내용이지 방법이 아닙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교회와 목사를 섬기는 방법이 아닌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지난 세대의 신앙 방법이 아닌 순수한 신앙의 본심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실험적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사례비를 사양하고(사실 아직 기대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닙니다), 아내와 함께 브런치카페를 운영하며 자비량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젊은 교인들이 주를 이룹니다. 강조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보다 삶 중심의 신앙을 강조합니다. 교회 안으로 모이게 하고 울타리를 치는 신앙보다는 교회 밖으로 나가고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앙을 강조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를 건물 중심의 신앙이 아닌 삶 중심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또한, 지성적 신앙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매우 단편적인 구분이지만 신앙의 반대편에 이성을 놓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성을 강조하면 불신앙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지성적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생각도, 고민과 갈등도 내놓지 못하는 맹목적 신앙공동체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고민과 갈등을 내놓고 함께 대화하며 지혜를 구하는 공동체가 소중합니다. 또한, 과거지향적 신앙보다는 미래지향적 신앙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통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하는 교훈은 과거 인물들이 가졌던 신앙의 방법이 아닙니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데, 어떻게 옛날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합니까? 신앙의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를 배워 오늘의 삶에 적용하는 지혜가 중요하지요.
어느 여배우가 그랬습니다. 오늘은 모두가 똑같이 새로이 사는 것인데, 왜 자꾸 자신에게 삶의 방법을 묻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요. 짧은 장면이었지만, 목사로서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웃기는 경험으로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해댔으니까요. 청년의 갈등과 고민을 외면하면서 과거의 사람들에게서 지혜를 찾으려 하지 말고,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의 지혜를 찾아가는 한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평생 지혜를 찾아 헤맬 수 있음>

양성득 목사 (덕수동 작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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