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렁한 바지, 지나치게 큰 신발, 칫솔 모양의 콧수염. 우리들 대부분이 떠올리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우스꽝스러움의 이면에는 약자를 대변하고, 할리우드의 역사를 만들었으며, 비뚤어진 세계를 향해 비판의 소리를 높인 진정한 채플린의 모습이 들어있다.

지난 5월 미국영화연구소가 발표한 미국의 100대 영화 가운데 하나로 뽑힌 “모던 타임즈”. 이 영화를 통해 채플린은 당시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업률 증가에 위기감을 느끼고 나름의 경제관을 토대로 물질 문명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서민들의 가난과, 실직, 파업에 맞서는 인물로 그려진 채플린은 담배 한 대 피울 새 없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분업 현장 속에서 희화화된 근로자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자동 급식 기계가 부작용을 일으키는 장면, 분업화된 현장에 찌들어 동그란 사물을 보이는 족족 죄려 하는 모습은 분명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기계의 노예가 된 인간을 암시하여 맘 한켠을 착잡하게 한다. 감옥을 오가며 만난 집 없는 소녀와의 생활을 통해 초도덕적인, 자유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종반부에 나온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보여주는 카페의 모습은 사회에 던지는 무언의 항변이었다.

“그(채플린)는 모든 사태에 대해 깊이 있게 느끼고 있었다. ‘모던 타임즈’의 마지막 장면은 뉴딜 시대의 낙관론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사교계에서 채플린과 만난 D.L 제임스의 말이다.

채플린의 첫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도 동시대를 살았던 히틀러와 그의 파시즘을 신랄하게 탄핵한 ‘겁 없는’ 영화였다. 4일 간격의 출생 차이와 비슷한 코밑 수염을 가졌던 그들이었지만 약자의 입장에 서있던 채플린과 강자의 입장의 서있던 히틀러의 사회를 바라보는 입장은 완전히 구별됐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히틀러 관련 뉴스를 구해 보며 치를 떨었던 채플린은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 가며 127분의 긴 러닝 타임의 영화를 1940년 12월 16일에 선보였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힝켈로 오인된 초라한 이발사 찰리가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클라이맥스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기계화를 경계함과 동시에 따뜻한 인간애의 회복,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을 표현한 채플린은 전쟁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언뜻 보기엔 쌀쌀맞고 거만해 보였던, 영화에 있어서 만큼은 자기 중심적이었던 채플린.그러나 그는 부모님의 이혼과 어머니의 정신병, 가난 등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세계를 뒤흔든 20세기 영화계의 거장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채플린의 일대기와 영화가 아직도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는 것은,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세계로의 회귀를 꿈꿨던 그의 비전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품고 있어서가 아닐까.

지인수 기자 ultra19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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