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스스로 춤추는 꼭두각시라면

매번 볼수록 아름다운 한동의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하루는 하늘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에 물음표가 새겨졌다. ‘나는 주체적인 인간일까 수동적인 인간일까?’ 이것은 내게 전혀 현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사고가 아니라 현실적 삶을 지탱하기 위한 기반으로써 며칠간 눈동자에서 지워질 수 없었다. 다분히 개인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상태를 혐오하는 나로서는 삶을 주체성 없이 이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다. 그 때문에 나는 고등학생시절, 과도기적 심리상태를 구실로 사회를 유지하는 일반적인 법칙과 기성인의 사고방식에 무조건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반항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며칠 전, 한동하늘에서 모태신앙으로 시작된 내 신앙의 근본적인 신념과 부딪힌 것이다. 다시 말해, 주체적인 삶을 갈망하는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께서 모든 걸 계획하신 운명적인 인간의 삶 사이에서 기준점을 잃어버린 것이다. 현재로서 나는 지금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요, 답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한동인으로써, 더욱 성숙된 당신이 되기 위해서는 어쩌면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기에 던져놓는 것이다. 정해진 답이 없기에 문제해결에 있어 결과론적으로는 승률이 없는 게임이지만 가치 있는 인간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히 여겨야 한다. 분명 이 문제는 답을 요하는 과정에 있어 내 자신에게 지적확장의 즐거움은 물론 영적인 성장을 줄 것이다. 한동을 걸으며 쉽게 볼 수 있는 하늘이라는 무한한 노트에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하는 한동인을 자주 보기 원한다.

강규원(글로벌리더십 06)


배고픔과 Honor code

매번 식사 시간마다 자리가 모자란 불편함을 덜고자 방학동안 식당이 변신을 했다. 무려 300석이 증설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되면 여전히 터져 나오는 불만의 소리들이 있다. 어째서 배식 줄은 줄어들지 않냐는 이야기가 그 골자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길게 늘어선 줄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새 학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 식사 시간 식당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까만 선글라스를 낀 채 ‘Honor code는 바라지도 않는다. 새치기만 하지 말자.’ 라는 글귀가 적힌 팻말을 든 사람.
자치회 회장인 그가 한동인들에게 전달하는 이 메시지에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Honor code는 지성, 영성, 인성을 두루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는 한동대의 인성 교육의 결정판이자 한동의 큰 자랑거리가 아니었던가? 순간의 배고픔으로 인해 Honor code가 기어코 바라지도 않는 그 어떤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음에 한동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새치기 문제는 타인을 향한 배려와도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 7:12)’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는 문제에 있어, 또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 배려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자신이 배고픈 만큼 타자도 허기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만 더 고려한다면 한동에서의 새치기 문제는 조금쯤 해결되지 않을까?
점차 쌀쌀해지는 날씨가 가을이 되었음을 알린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이 가을에, Honor code를 자랑스러워 하는 한동인, 또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한동인의 모습으로 새치기의 유혹을 물리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나리 (언론정보 04)


환난을 부르는 무지의 政客이여

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은 핀란드에서 북한 미사일 실험에 대해 “미국까지 가기는 너무 초라하고 한국으로 향하기에는 너무 큰 것 아니냐”며 “정치적 목적”이라는 한심한 결정을 해버렸다. 또한 북한의 핵 실험에 대한 정확한 단서나 근거 없는 예기는 “여러 사람이 불안해 하고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까지 했다.
이제 대통령은 지지율 같은 세속적인 것에는 달관한 듯하다. 그러지 않고선 오히려 자신의 그러한 한마디가 “여러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으로 까지 밖에 날아올 수 없는 사정거리 550KM의 스커트미사일을 평화적 과학기술을 목적으로 실험했다면, 그 정도로 돈이 남아도는 과학강국인 북한에게 우리가 계속해서 피땀 어린 쌀을 갖다 바치는 우리는 뭐가 되는가.
북한 미사일이 미국까지 가기에는 ‘초라하다’니. 그 말이 맞는다면, 그깟 초라한 쇳덩이 하나 때문에 안보리 결의안까지 통과시킨 유엔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전부 오판을 했다는, 이 위험한 결론을 뒷받침할 준비까지 대통령은 이미 끝냈다는 것인가. 참으로 세기(世紀)의 성군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지난 1일 실시한 모의 대포동 1호 요격실험에 대해 알고 있기는 할까?
성경에는 ‘내게 해를 입히지 않은 자를 해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한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사람이라면 어떠한 의견이든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수장 정도 되는 사람이 개인적 발상으로 국가의 핵심 안보를 대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서민들(그 숫자가 무려 수천만이다)의 생명마저 위협하는 죄악인 동시에, 5000년을 이어온 한민족의 근간(根幹)을 흔드는 역사의 배신이다. 그들이 당신에게 무슨 해를 끼쳤는가? 주님의 말씀은 정확하고도 무섭다는 것을 명심하라.

김진섭 (글로벌 리더십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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