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세계사

이 세상에는 수많은 금기들이 있다. 그 금기가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것을 깨뜨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은밀한 유혹이다. 여기 그 달콤한 유혹 속으로 초대하는 책이 있다. 바로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 ‘악마의 시’는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가며 때로는 겹쳐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온갖 새로운 언어와 파격적 문법, 그리고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특유의 현란한 문장을 창조해낸다.

소설은 신의 묵인 아래 인간을 제물로 삼은 악마의 '실험'을 다루고 있다. 이는 성서의 ‘욥기’와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 비교해 볼 수 있다.

주인공인 지브릴 파리슈타는 천사로 변하고, 살라딘 참차는 악마로 변한다. 그들이 천사처럼 착해지고 악마처럼 사악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후광을 가진 천사와 염소뿔을 가진 악마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외형적 모습의 변화는 이 두 주인공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면서 주인공들 역시 변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선과 악에 대한 문제들이 언급된다.

소설은 런던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이슬람 문화를 뿌리로 삼고 있다. 모두 9장으로 된 소설은 홀수장에는 현실이, 짝수장에는 천사가 된 지브릴 파리슈타의 꿈이 교대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지브릴의 꿈 부분인 짝수장에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부정적 묘사, 이슬람 경전 꾸란의 일부를 ‘악마의 시’로 묘사한 부분 등 이슬람 세계를 분노하게 한 신성모독적 내용들이 실려 있다.

이런 민감한 내용들이 원인이 되어 한 권의 책이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1989년 이란의 최고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루시디에게 이슬람교 모독죄를 적용,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서방 세계와 이란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루시디에 대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번역자들이 이슬람교도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 등 이 책의 사회적 파급력은 가히 ‘악마적’이었다. 결국 ‘악마의 시’라는 제목 뒤에는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이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녔다.

1998년 이란의 모하메드 대통령은 루시디에 대한 사형선고를 철회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슬람 과격파들은 루시디에 대한 현상금을 걸어놓고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루시디는 미국 뉴욕의 어딘가에서 은둔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옮긴이 김진준 씨는 말한다. “때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재미있다...(중략)...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이제는 이 한 권의 책에 얽힌 온갖 비극들을 잊어버리자고, 이 소설을 읽을 때라고”

조내연 기자 yiemo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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