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을 겪었다. 지축을 흔드는 큰 지진은 처음 경험하다보니 그저 잠시 어벙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온 두 번째 지진에 모두가 공포에 휩싸여 건물을 뛰쳐나갔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고 나오지 못한 학생들이 더러 보일 정도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운동장에 모였다. 누군가는 축구를 하던 상황이 중단되어 아쉬웠고, 누군가는 수업 중에 헐레벌떡 뛰어나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또 누군가는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과제 및 모임을 계속 이어갔다. 채플 앞에서는 뜨거운 찬양과 기도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우리는 모두 혼란스러웠다.
당시 나 또한 학생회관에서 학회 모임이 한창이었고, 큰 울림과 함께 학생회관은 괴성으로 가득 찼고 모두가 빠르게 대피했다. 예상치 않은 지진에 모두가 이성을 잃고 대피를 하는 가운데 이전에 알지 못한 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는 책상 위에 있던 나의 물건들을 허겁지겁 챙기고 있었다. 죽음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나는 그 전자기기들과 지갑에 든 돈 몇 푼이 그렇게 아까웠을까.
흩뿌리는 빗줄기와 다시 올 지 모른다는 여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운 운동장에서 갑자기 내가 손에 쥐고있는 전자기기들과 지갑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하찮게 보였다. 또한 내 마음이 잡고 있는 목표들 또한 다시 떠올랐다. 마찬가지였다. 4학년이 되어 사회로의 첫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다보니 여러가지 요구 사항에 나를 맞춰야 했다. 높은 연봉, 사회적 지위,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래야 했다. 각종 자격증, 대외활동, 학점을 내 스펙으로 작성하고, 나를 소개하는 소설을 쓰다보면, 내 지난 인생은 겨우 몇 자로도 적기 힘들만큼 안타깝다. ‘그래도…그래도’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내가 아는 나를 지워가며 견뎌내던 지난날이 무색하게, 큰 지진으로 느낀 파리목숨과 같은 내 존재의 허무함에 동경하고 있던 사회적 기준들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평소 성경과 친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그물 한 가득 잡힌 물고기를 외면하고 제자의 길을 선택한 베드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진이 일어난 순간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일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에겐 삶의 마지막과 같은 절박함이라고 느껴서 였을까. ‘베드로가 만선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를 때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하며 그에게 공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일확천금과 같이 갑작스럽게 맞은 만선의 기쁨과 부를 뒤로 하고 고생길이 불 보듯 뻔한 제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후대가 길이 칭송하는 사도가 되었다.
날마다 뉴스에서는 어려운 청년 취업 문제와 같이 우리를 조급하게 하는 소식들을 보도한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서 보면 결코 우리에게 그 것들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아닐 지 모른다. 오히려 우리는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혹여나 고생길로 접어들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세상을 바꾸겠다며 흥해읍 남송리 3번지에서 즐겁고 편한 것들과 떨어진 불편 속에서도 매일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쓸데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중요한 가치가 희미해지는 세상에 유명한 영화의 대사 한마디를 외친다. ‘뭣이 중헌디!’

언론정보문화학부 10 김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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