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히치콕이 고안한 영화 속 극적 장치로 ‘맥거핀’이 있다. 속임수, 미끼라는 뜻으로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하며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하는 요소다. 올여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좀비 영화 부산행에도 맥거핀의 역할을 하는 노숙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허름한 행색의 그는 왠지 극 중에서 민폐를 끼칠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관객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극 후반에 희생을 자초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사회에는 이처럼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홈리스들이 있다. 과연 그들이 사는 현실은 어떠할까. 그들의 실제 삶을 알아보자.
 

노숙인 말고 홈리스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 대한민국 법률 제13101호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 법률) 제2조에서 정의하는 노숙인이다. 2011년 당시 위 법이 제정됐을 때 일부 야당과 사회시민진영에서는 노숙인이라는 용어 대신 홈리스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노숙인이라는 단어가 포괄하는 대상이 한정된다는 주장이었다. 노숙인은 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노숙인시설에 입소하는 사람들로 한정 지어진다. 하지만 고시원, 찜질방, 피시방 등을 전전하며 지내는 집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도 거리에서 자지 않을 뿐 주거가 불안정한 주거취약계층이다. 2014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노숙인 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리와 노숙인 시설에서 지내는 사람은 1만 2천 명이지만 고시원, 찜질방, 피시방 등에서 지내는 주거취약계층까지 포함하면 실제 적절한 주거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은 25만 명이다. 경북대학교 법률대학원 성중탁 교수는 “홈리스에 대한 정의는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임시적이더라도 자신만의 사적 공간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정의가 가장 보편적인 정의이다”라며 “홈리스는 적절한 주거를 누릴 권리가 심각하게 박탈된 상태로, 거리 노숙과 같이 극단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거나 안전하지 않은 장소에의 거주까지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홈리스 용어 사용을 주장했던 홈리스 지원단체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황성철 씨는 “노숙인은 한정적인 용어로 법률에서 칭하는 대상의 범위가 너무 줄어든다. 거리에서 지내다가 돈이 생기면 쪽방이나 찜질방에 가서 자기도 하다 다시 거리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꼭 거리에서 자는 게 아니더라도 주거가 보장되지 않는 주거취약계층들은 법률안에 포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 한글 문화연대는 홈리스가 외래어라는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법제명은 ‘노숙인’에 ‘등’을 붙여서 ‘노숙인 등’으로 정의됐다.

부실하기 그지없는 정책

앞서 2011년 노숙인 법률이 제정된 이후 2016년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법률 제7조(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의 수립 등) 종합계획안을 수립했다. 종합계획안은 ‘노숙인 등’에 대한 첫 종합지원 대책으로 취약계층의 노숙예방과 특성별 지원을 통한 사회복귀를 위한 대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종합계획안의 문제점으로 ▲재정계획의 누락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절된 재정체계 ▲노숙인 등의 증감과 관련된 사회•경제•인구학적 환경 및 그 변화에 대한 전망의 생략 ▲지원 대상의 축소 문제를 지적한다.
가장 예민하게 다뤄져야 할 재정문제가 종합계획안에 누락돼있다는 것이다.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이동현 씨는 논문 『노숙인 등 복지종합계획, 홈리스의 현실에서 출발해야』에서 “종합계획안이 안이라는 점에서 이후에 재정계획이 추가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재정계획이 누락된 것은 이후 계획 실현에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홈리스들은 전국적으로 분포돼있는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체계가 이원화돼있어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성 교수는 “종합계획안의 실행 가능성 여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사전 협의와 조율이 관건이다”라며 “따라서 종합계획안에 분절된 두 재정체계의 통합방안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홈리스의 증감과 관련된 사회•경제•인구학적 환경 및 그 변화에 대한 전망이 종합계획안에 빠져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이며 체계적인 지원은 불가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씨는 “각종 사회•경제적 상황들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라며 “장기적 전망을 빼놓고 세워진 종합계획안은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무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원 대상의 축소 문제도 지적된다. 현재 복지부의 종합계획안에는 전체 ‘노숙인 등’의 수는 약 1만2천명이라 명시돼 있다. ‘노숙인 등’의 규모를 거리와 노숙인시설 입소인으로 일방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25만 명에 달하는 주거취약계층은 종합계획안 전 영역에서 배제되고 있다.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신원우 교수는 “노숙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대책 즉 주거지원, 소득지원, 필요한 서비스를 통해 더 이상 노숙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라며 “하지만 정책의 대상을 거리 및 시설 노숙인으로 한정하고 제한된 예산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려다보니 주거취약계층까지 확대되는 것에 대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몰랐던 홈리스의 현실

정착된 주거환경이 없는 홈리스는 범죄에 노출되기가 쉽다. 일부 홈리스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타내려는 사람들에 의해 요양병원으로 입원되기도 한다. 2014년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이와 같은 불법 요양병원의 수는 1,289개로 집계됐다. 홈리스들은 일주일에 담배 3갑, 커피믹스 5개, 기초생활수급자 지정 등과 같은 유혹에 이끌려 요양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병원이 이들 홈리스에게 밥을 주고 공동 잠자리를 제공하면, 국가는 고스란히 1인당 200만 원 내외의 금액을 병원에 지급한다. 홈리스는 일당 정액 수가를 채워주는 요양병원의 수익 창출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명의범죄 집단들은 돈이나 숙식을 제공해주겠다는 조건으로 홈리스들을 유인해 이들의 신분을 도용한다. 2013년 홈리스행동이 홈리스 100명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총 267건의 명의도용 피해가 발생했다. 홈리스는 대포폰 요금으로 평균 547만 원, 대포차 할부로 2,024만 원 가량의 빚을 지고 있었다. 명의도용으로 인한 홈리스의 평균 피해액은 3,226만 원에 달했다. 2013년 홈리스행동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수행하고 있는 노숙인 법률지원에 상담을 받으러 오는 홈리스의 90% 이상이 명의도용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씨는 “이와 같은 현실은 기존 노숙인 등에 대한 복지지원체계의 실패에서 빚어진다”라며 “여전히 시설 입소 중심의, 지역에 따라 제각각 잔여적으로 제공되는 복지의 한계가 홈리스들로 하여금 변태적인 방식으로 생존을 의탁하게 하는 문제를 낳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2011년 발표한 보고서 ‘우리나라 노숙인 사망실태’에 따르면 노숙인 사망자는 1998년 5명, 2002년 273명, 2005년 이후부턴 300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1998년 IMF 이후 급속히 증가한 노숙인 사망자 수는 노숙인 문제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황 씨는 “일을 하지 않고 게을러서 노숙인이 되었다는 사회적 편견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라며 “노숙인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제도에 있어서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홈리스에서 이젠 홈리스 활동가로

‘홈리스행동’은 홈리스 문제를 게으름, 무능 등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인식에 반대하며, 야학이나 현장지원 등의 활동을 통해 홈리스를 돕는 사회단체다. 2년간의 노숙생활을 하다 현재는 홈리스행동의 활동가가 됐다는 김종언(51) 씨. 자신을 돕던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고 활동을 결심했다는 그에게 홈리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종언 51세에요. 지금 일은 지역에서 하는 공공근로 하고 있는데 이것도 일이 일정하지가 않아서 끝나면 계속 옮겨가면서 하고 있어요. 지금은 LH임대주택에 들어와 10년째 살고 있어요. 또 제가 도움을 받았던 단체에서 이젠 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Q 홈리스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연으로 홈리스 생활을 하셨나요?
1998년도에 IMF가 터져서 회사가 문을 닫게 됐어요. 애들 장난감 만드는 완구 회사였는데 부도가 나서 문을 닫게 되더라고요. 그런 상태에서 놀다가 일자리를 찾으려는데 잘 안되고 부모님한테는 미안하니까 지방에 일을 하러 나간다 하고 역에서 계속 노숙생활을 한 거죠. 그러다 단체 분들 만나서 이렇게 (거리에서 벗어나게) 된 거고.

Q 거리에서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4호선에 서울역 옆 회현역이라고 있어요. 거기서 지냈어요. 서울역에 가면 사람들이 많아요. 조용한 곳을 찾아서 회현역으로 갔어요. 여기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나까지 7명 정도 있었는데 그중 4명하고 친하게 지냈어요. 그 중 한 명도 나처럼 IMF 때 회사가 부도 나서 역으로 온 사람이고. 사람들이 많이 그런 상황 때문에 온 것 같았어요.

Q 거리에서 지내면서 힘드셨던 일은?
역은 24시간 개방돼 있다 보니까 항상 사람들이 돌아다니잖아요. 특히 여성분들 신발 소리가 딱딱 이렇게 되게 잘 들려요. 잠이 쏙 깨요. 잠을 많이 못 자요. 많이 설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이렇게 사냐고 손가락질해요. 그때 당시 우리가 할 일자리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한번은 “나도 예전에는 당신과 같은 일반인이었다. 당신이 나 같은 상황에 처해봐라. 어떤 처지가 되는지”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고.

Q 밥과 잠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끼니는 서울역 중앙지하도에서 주는 무료급식소가 있었어요. 거기 가서 밥을 먹었어요. 교회에 가서 나눠주는 무료점심도 먹고 그렇게 생활했어요. 또 교회에 가면 구세군으로 200원 정도 주는 거 있어요. 일주일 동안 곳곳에 교회를 돌아다녀요. 몇 군데나 돌아다녔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많이 돌아다녔어요. 그렇게 돈을 모아요. 7,000원 정도 모았어요. 그렇게 족발 같은 거 한번 사 먹기도 하고 그랬어요. 여름 같은 경우에는 깔판이나 박스 주어다가 잤어요. 겨울에는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아서 서울역에 센터 같은 곳에 가서 침낭을 얻어다가 생활했어요.

Q 거리에서 지내면서 건강은 괜찮으셨나요?
감기약이나 이런 건 센터에 가서 얻을 수 있어요. 근데 옛날에 술을 많이 먹어서 지금 알코올성 간 질환이 있어서 치료하고 있어요. 거리에 있으면 술을 많이 먹게 돼요. 잠을 안 자면 너무 괴로워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수군 많이 괄시하고 (그래서) 술을 먹고 쓰러져서 잠에 들려고 하는 거죠. 안 먹던 사람도 노숙하면서 먹게 돼요. 나 같은 경우에도 서울역 가보면 애들 데리고 가족들이 돌아다니는 모습 보면 엄청 부럽고. 그런 모습 보면 가정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아쉽고 막 그런 생각이 드니까 괴롭죠. 그런 모습을 일부러 안 보려고 (술을 먹기도) 하고.

Q 시설이나 요양병원에 들어갈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나는 잠버릇이 심해요. 그래서 피해 주기 싫고 불편하고 그래서 안 들어갔어요. 다른 사람들도 각자 취향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어요. 담배를 피고 싶어도 못 피고 자유를 막아버리니까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Q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많다는데 범죄에 노출되신 적은 있으신가요?
저는 없지만, 주변에서 많이 봤어요. 사람들이 밥 한 끼 먹자고 꼬셔서 (홈리스들이) 이름하고 주민등록 번호를 빌려주는 거예요. 다른 은행에 통장을 만들어서 명의 도용하는 거죠. 그 사람들이 차도 사고 핸드폰도 사고 그렇게 해서 최소 1,2억의 빚을 지게 되는 홈리스들이 있어요. 그러고 파산 신청을 하게 되는 거죠.

Q 거리에서 벗어나는 데 어떤 도움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일자리가 중요해요. 자활센터에서 일해도 30만 원 정도 밖에 못 받아요. 그 돈 가지고 쪽방에서 생활하면서 무료급식소 가서 밥을 먹고 지내요. 쪽방에서 지내다가 일이 없고 그러면 거리에 가서 노숙하고 그러는 거죠. 나도 쪽방에서 지낸 적 있어요. 하루에 8,000 원씩 내고. 거리에서 지내는 것보다 조금 나을 수도 있는데 비슷해요.

Q 홈리스행동은 어떻게 만나게 되어 활동가까지 하게 되셨나요?
매주 목요일 8시만 되면 꼭 커피를 들고 찾아와 불편사항이 있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봤었어요. 그렇게 물어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옷이나 신발 갖다 주고 도움을 받았어요. 그렇게 친하게 지내면서 그분들이 하는 활동이 보기 좋아 보여서 “나도 활동을 하고 싶다” 얘기를 드렸고 지금은 활동을 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부에서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많이 줬으면 좋겠어요. 3~4개월씩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리고 노숙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멸시하니까 우리가 설 자리가 없어요. 사람들이 멸시하는 게 아니라 지나가면서 힘내시라 이런 말이라도 한 마디 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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