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다시 캐릭터에 눈을 돌리고 있다. 피규어를 모으고 프라모델을 조립하며 캐릭터가 그려진 화장품을 산다. 주로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 캐릭터들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아이들의 영역이었던 캐릭터에 다시 어른들이 당당하게 발을 들이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키덜트의 열기를 확인하기 위해 경주 키덜트 뮤지엄을 다녀왔다.


“엄마, 잠깐만! 이것만 보고!” 그때 그 시절 우리에게는 단 한 순간도 놓치기 싫어 밥상을 TV 앞에 가져와가며 봤던 만화영화가 있었다. 만화 주인공이 나온 딱지, 스티커를 모았고 콧노래로 주제곡을 흥얼거렸다. 함께 자라온 ‘친구’들을 다시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제는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지 않아도 그들을 구입해 내 곁에 둘 수 있다. 국내 시장규모 7천억, 매년 20% 성장률, 향후 2년 안에 1조 원 시장 규모 달성. 이것은 키덜트(Kidult) 시장의 이야기이다.


행복한 피터팬들의 장난감

키덜트 뮤지엄이 주제로 삼은 키덜트(Kidult)란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성인이 되어서도 유년시절의 취미나 성향을 고수하는 소비계층을 말한다. 그들이 소비하는 조립식 장난감인 프라모델이나 관련 소품을 수집하는 문화 또한 통틀어 ‘키덜트’라고 일컫는다. 아동들에게 한정돼 있던 장난감 산업이 새로운 이름으로 성인들까지 사로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016년도 2월 계명대학교 김재희씨가 발표한 논문「키덜트적 표현방법을 적용한 인테리어용 텍스타일 디자인 연구」에 따르면 키덜트 문화가 태동한 것은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각박해진 사회에서 취미 생활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현대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소비하는 것보다 어렸을 적 보며 자라왔던 만화영화와 캐릭터에 더 친근감을 느끼고, 그것이 수집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키덜트 열풍이 일어나자 전국적으로 키덜트와 관련된 문화시설이 생겨났다. 그중 경북에는 경주 보문단지에 위치한 '키덜트 뮤지엄(Kidult Museum)'이 있다. 지난 4월에 개장해 평일에는 약 300명,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약 1,000명 정도가 몰리는 키덜트 뮤지엄에는 가족들부터 연인들까지 다양한 관람객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촛불영사기와 필름영사기를 비롯한 ▲축음기 ▲전축 ▲라디오 ▲고전피규어로 총 6개의 전시관이 있는 뮤지엄 1층 내부로 들어가자 LP판과 초기 영사기, 축음기, 영화 포스터들이 40~50대의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어릴 적 전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옛 추억에 사로잡혀 한참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구경을 하고 있었다. 3층에는 ▲아트토이 ▲디오라마 ▲정크아트 ▲레고 ▲갤러리 총 5개의 전시관이 있었다. 영화 캐릭터들이 국경과 시간을 초월한 채 브라운관티비 틀안에 전시되어 관객들에게 친근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자신이 좋아하던 만화영화 앞에서서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한, 2층 전시관 한편에는 틀린 그림 찾기, 레고 놀이터, 캐릭터 가면 체험과 같은 활동들도 준비되어 있어 관객들이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 브라운관티비 틀 속에 전시된 다양한 만화 세계가 관람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김운영 사진기자

양지로 나온 키덜트 문화

사실 기존의 키덜트 문화는 비주류 문화로 치부되어 왔다. 건담 프라모델을 모으거나 만화책을 본다고 하면 흔히 실제적인 관계 대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마니아들과만 소통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내기 쉽다. 키덜트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른의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아이 같은 사람을 칭하는 피터팬증후군의 일종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런 마니아들만의 문화가 대중적인 키덜트 문화가 되기까지는 인터넷 커뮤니티, 대중매체와 SNS의 역할이 컸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개그맨 지상렬은 3,000장 가까이 모은 LP판을 공개했고 배우 심형탁은 일본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에 관한 100개 이상의 물품을 수집하는 데에 1,000만 원 이상을 들였다고 밝혔다. 이렇듯 유명인들이 프라모델이나 캐릭터 상품을 수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키덜트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공개적이고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사진 기반 SNS인 인스타그램(Instagram)에서 피규어를 키워드화한 게시물만 전체공개 게시물로 323,916개에 육박한다. 단순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수집한 피규어를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사진 게재를 끌어내는 트렌드 또한 키덜트 문화가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요소가 됐다.
 피규어를 모으고 있다는 관람객 진요한(경기도 시흥 31) 씨는 키덜트 물품을 수집하는 이유에 대해 “어른이 되어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어렸을 때 좋아했지만 사지 못했던 장난감들과 비슷한 피규어를 수집하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키덜트 뮤지엄의 김동일 관장은 “20∙30대가 주로 오고 30대에서 40대 초반까지의 성인 관람객들이 키덜트 뮤지엄을 찾고 있다”라며 “키덜트의 인기는 끝이 없다고 본다. 나이별로 가지고 놀다가 또 자식이 크고 자식이 크고, 어렸을 때는 계속 가지고 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일본 만화 ‘나루토’의 캐릭터들을 모형으로 만든 아트토이. 김운영 사진기자

장난감부터 마케팅까지, 삶과 함께하는 키덜트 문화

아이의 감성을 건드리는 키덜트 문화는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 프라모델과 같이 실체가 있는 소품 외에도 콘텐츠 자체가 사람 안에 있는 키덜트 감성을 끌어내는 원리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나이를 불문하고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해리포터’나 ‘헬로키티’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의 테마파크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지난 2014년 유니버설 스튜디오 올랜도에 해리포터 테마파크를 개장한 후 지난 분기보다 44.9% 높은 수익을 냈다. 일본의 캐릭터 전문기업 산리오(Sanrio)는 40여 년간 헬로키티를 세계 130여 개 나라에 수출, 관련 물품 약 5만 개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이 둘은 모두 ‘마법’과 ‘고양이’ 같은 아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로 어른에게도 인기를 끌어낸 사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6 콘텐츠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내 캐릭터 산업 매출액은 전년 대비 11.4% 증가한 11조 원으로, 수출액은 16.4% 증가한 7,761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인터넷 쇼핑사이트 옥션은 올해 1월부터 7월 7일까지 판매된 프라모델, 피규어, 캐릭터 상품의 판매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6%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편 피규어나 프라모델 등의 직접적인 키덜트 물품을 판매하는 대신 다양한 캐릭터들과 협업상품으로 ‘키덜트 마케팅’을 하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LG생활건강 더페이스샵은 지난 7월부터 22종의 디즈니 협업 상품을 출시했다. 디즈니 캐릭터 ‘미키마우스’와 ‘위니 더 푸’ 등의 디자인 전면에 넣은 쿠션 제품은 이틀 만에 1차 물량 13만 개가 모두 판매됐다. 식품업계에서도 키덜트를 외면하지 못했다. 삼립식품은 지난해 7월 카카오톡 캐릭터 스티커와 빵을 함께 담아 판매하는 ‘카카오프렌즈 빵’을 출시한 이후 매달 약 400만 개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올해 7월 선보인 ‘라인프렌즈 캐릭터 빵’을 포함한 삼립식품의 캐릭터 빵 시리즈는 어린 시절 샤니 빵을 먹고 스티커를 모으던 현재 20대 대학생들의 추억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속초’ 열풍을 일으키며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군 증강 현실게임 ‘포켓몬 고(Pokémon GO)’ 또한 키덜트의 감성을 건드린 경우다. 키덜트 문화의 기본요소는 ‘수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포켓몬 고는 이러한 키덜트의 수집욕을 자극한 대표적인 콘텐츠다. 전문가들은 포켓몬고의 인기 원인을 어렸을 적 좋아하던 캐릭터를돌아다니면서 모을 수 있는 재미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처럼 어린이의 취향을 가진 어른과 조기 성인화되고 있는 어린이들 모두 소비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 키덜트 상품은 앞으로도 계속 생산되고 마케팅에 이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피터팬은 말했다. ‘난 네 꿈과 희망과 소망이야, 피터. 네가 어른이 된다면 난 잊혀서 사라져버리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너를 기다릴게. 나중에라도 꿈과 현실의 세계를 믿는다면, 난 거기서 너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사람들은 모두 추억을 뒤로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먼지 묻은 LP판과 영화 포스터들이 눈에 밟히고, 화장품 하나를 사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캐릭터에 손이 간다. 키덜트 문화는 더 이상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혹은 철없는 피터팬들만의 애장품도 아니다. 꿈많고 순수한 시절의 나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힘들고 지치는 일상에 그때 그 시절의 만화영화, 노래, 혹은 캐릭터 소품으로 어릴 적 ‘나’를 불러내는 건 어떨까. 그 아이는 어느새 불쑥 커버려 지쳐버린 피터팬에게 위로의 손수건을 건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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