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도 엄마, 아빠,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엔 이러한 가족의 형태를 지니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 바로, 보육원에 머무르는 아이들이다. 여기,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청년이 있다.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해 세계구호단체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청년 정다훈(23) 씨. 그는 오늘도 그 꿈을 위해 한걸음 발을 내디디고 있다.


2015년 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요리 재능기부단체 ‘For all chef’s dream(이하 FCD)’의 대표를 맡았던 정 씨는 요리를 매개체로 해 아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요리 재능기부를 통해 자라는 아이들의 꿈의 거름이 되고 싶다는 정 씨 또한 어린 시절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자신을 ‘아이들을 위한 정다훈’이라고 소개하는 정 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기'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설명하고 있는 정다훈 씨. 사진기자 김운영


요리와 함께한 어린 시절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23살 정다훈입니다. 남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는 ‘아이들을 위한 정다훈’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다 보니까, 저를 소개할 때는 스스로를 아이들을 위한 정다훈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Q 정다훈 씨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나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그때 저는 그냥 어머니와 아버지가 따로 산다는 것만 알았지 ‘이혼’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몰랐어요. 근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말실수를 하셔서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들켰어요. 그러고 나니까 반 아이들이 저를 고아 취급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왕따도 당하고 아이들과 많이 싸웠어요.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도 문제아 취급을 많이 당했어요.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을 보내고, 6학년 담임선생님이 저를 많이 훈육해주셨어요.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하고 선생님이 바뀌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더라고요. 그 이후로도 요리를 배우기 전까지는 많이 방황했었어요.

Q 요리는 어떤 계기로 접하게 되셨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인가, TV에서 광고인지 드라마인지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여자와 남자가 큰 주방에서 예쁘게 요리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아름다워 보였어요. 나도 나중에 내가 결혼해서 사랑하는 여자와 저렇게 요리하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습니다. 그렇게 배우다가 다음 해 1월에 제가 첫사랑을 만났는데 그 여자한테 맛있는 빵을 만들어주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다 보니 이게 재미있어지고, 재미있어지다 보니까 꿈이 생기고, 꿈이 생기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외식업계 쪽으로 꿈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시 시작된 요리 인생

Q 중간에 요리를 그만두기 위해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특성화 고등학교를 나왔다 보니까 학교가 취업에 좀 더 기반을 두고 취학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요리업계에서 1년 2개월 정도 일했어요. 그런데 열심히 일해도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실수도 잦고. 심지어 선배 한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난 너를 포기했다.” 이 말을 들으니까 진짜 요리가 하기 싫더라고요. 너무 힘들고 어렵고 재미가 없어서 이걸 계속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직장도 퇴사하고 집에서 그냥 방학 아닌 방학을 보냈어요.
  그때 집에서 쉬면서 인터넷 요리사 카페 같은 데를 계속 들러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요리를 중점으로 한 이탈리아 여행 코스를 올렸는데, 750만 원을 모아서 이탈리아를 갈 수 있게 됐어요. 그때 함께하는 멤버 중에 한 분이 유독 사진을 좋아했어요. 여행 당시에 갑자기 비가 내려서 어떤 한 창고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그분은 비를 맞으며 전경을 찍고 계시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제가 요리를 처음 배웠을 때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왜 저걸 잊어버렸을까? 어느 순간 이게 힘들고 짜증 나고 재미가 없다 보니까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시 마음을 잡고 시작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 때문에 다시 요리를 시작하는 좋은 계기가 됐어요.

Q 아이들을 위해 요리 재능기부활동을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히 들려주세요.
제가 군대에 있었을 때, 결심을 하나 했었어요. 제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것에 대해 아픔을 갖고 있었는데, 저보다 큰 아픔을 가진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가족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부모님이 없이 보육원에서 지내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내가 치료는 해줄 수 없어도 포옹은 해주자’는 마음에 사람을 모아서 단체를 만들었던 게 FCD라는 요리 재능기부 단체였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밥을 만들어서 제공하자 생각했는데, 이건 아이들에게 뭔가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니 요리가 제 어린 시절 아픔을 이겨내는 데 큰 몫을 했거든요. 그래서 요리가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요리 재능기부활동을 했었습니다.

Q FCD 활동을 하면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꼈나요?
제가 이 활동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때 많은 보람을 느꼈어요. 자유분방한 사춘기 아이들이다 보니까 힘든 시간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간대가 너무 소중했고, 그 아이들과 저 또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치유가 많이 됐어요.

Q 정다훈 씨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나요?
친형인 것 같아요. 제가 무언가를 할 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친형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 한부모 가정이다 보니까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어요. 저랑 형이랑 8살 차이가 나는데, 형이 대학교 졸업반일 때였어요. 학교에서 형에게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비행기 푯값만 내라고 하더라고요. 그 외에는 다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형은 유학을 포기했어요. 왜냐면 그 당시 제가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원비도 금액이 높은 편이었거든요. 어머니께서 이 두 개를 한 달 만에 내기에는 벅차신 게 있던 거예요. 지금의 제 나이인데, 형은 당연히 가고 싶었겠죠. 그런데 형은 저 때문에 포기했더라고요. 그때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요즘 들어서 너무 고마워요.

흔들려도 도전하는 청춘

Q 청년다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 경험으로 말하자면, ‘가진 게 없어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20대에서는 가진 게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흔히 말하는 금수저, 은수저들은 부모님이 가진 게 워낙 많다 보니까 부담 없이 뭔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보통의 대한민국 청년들은 그게 해당이 안 되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오히려 가진 게 없어서,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뭔가 선택을 했을 때, 만일 실패를 해도 마음고생만 하면 되거든요. 물론 그걸 할 때 용기가 필요하죠. 다들 느끼겠지만,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게 많이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 한 발자국 내디디면 의외로 재미있는 일들이 많아요. 그래서 청년다움이란 가진 게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많고, 조금만 용기 내면 재미있는 일이 많아지는, 그게 청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Q 인생을 살면서 좌우명이나 철학이 있으신가요?
제 좌우명이자 꿈이자 철학이자 버킷리스트에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가 죽는 순간까지 그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기.’ 이게 저의 좌우명입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제3세계 아이들이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이 팔은 엄청 얇은데 배는 불룩 튀어나와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을 가지고 돈장사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 사람들한테 내가 제재를 걸 수 있는 세계구호단체를 만들어, 그래서 제3세계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청춘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군대 가기 전에 싫어했던 말이 있어요.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물론 책으로는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문장으로 봤을 때 저는 그 말을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군대를 전역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 보니까, 그 말에 너무 공감이 돼요. 청춘, 물론 어른은 어른이지만 저희는 아직 미성숙한 어른이잖아요. 아직 다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그게 욕심인 것 같아요. 그래서 미숙한 것에 대해, 너무 상처받지 말고 인정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 상황을 즐기다 보면 결국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청춘에 하고 싶은 말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거기서 만족은 하지 말되,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은 해야 하는데,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거다.’ 저는 지금도 많이 흔들려요. 그런데 전 그게 재미있어요. 아직 이렇게 채워야 할 게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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