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총장인선절차를 개정하기로 약속한지 2년이 넘게 흘렀지만 진행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이사회 회의록과 한동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2월, 5월, 8월, 12월 올해 2월까지, 매번 이사회 회의에 안건이 상정됐지만 의견을 나눈 후 다음 회의에 좀 더 심도 깊게 논의하는 것으로 미뤄지고 있다. 2014년 처음 화두가 됐던 청소 근로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간담회, 부서 및 총장과의 면담, 노동조합 가입 및 업체와의 교섭이 진행됐지만 근로자들의 근로 조건은 변함없다. 심심하면 발생하는 교수 충원 문제가 또 다시 터진 이번 언정 공연영상 교수 충원 사태 역시 전임교수 임용공고를 내기로 했을 뿐 더 이상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전형적이다. 이슈화되는 순간에는 팔팔 끓어오른다. 하지만 넘쳐나는 페이스북의 게시글들, 과거 i3의 토론들은 어떠한 가시적 성과나 진행이 되는 것 같은 순간 사그라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없어지거나 또는 또 다른 이슈가 그 자리를 덮는다. 불씨는 남아 있을 지 모르지만 그것이 횃불이 되어 주변을 밝히지는 못한다. 바쁜 학업과 일상 속으로 사람들은 돌아가고 남는 것은 몇몇의 외침인 경우가 많다.
 관심이 식는 소위 ‘냄비근성’을 한국인의 특성이나 학생들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불특정 다수인 대중의 관심이 하나로 집중되고 그것이 지속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위정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소통의 창구는 제한적이고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위정자들은 대중의 참여가 달갑지 않을 때마다 한발 빠져 살그머니 이슈를 잠재운다. 그러고 나면 대중들도 이슈와 함께 쿡쿡 옆구리를 찌르는 정도로는 쉽게 깨지 않는 깊은 잠에 빠지고는 한다.
 반면 학교의 이슈 중 이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사례도 있다. 버스비 인상, 프라임 사업, 생활관비 인상 등은 잡음이 있더라도 결국 진행된다. 내부적으로 다양한 준비가 갖춰지고 간담회가 열리지만 소수의 학생들만이 참석할 뿐 결국에는 현실화 되는 수순이다. 반대되는 의견에 부딪혀 잠정적으로 보류되던 계획도 어느 순간 그 일이 진행되고 있다.
 결과가 다른 두 사례들 간에는 그래도 공통점이 있다. 과정을 전부 다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진행이 안되고 있는 것이 알려지지 않고,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 알려지지 않는다. 충분한 물밑작업이 이뤄지거나 물밑에서 그대로 가라앉아 버린다. 추진하던 일은 어느 순간 결과가 공지되고 사라질 일은 소리소문 없이 묻히고 만다.
 이 정도면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의도가 다분하게 보인다. 2017년 말 총장인선이 어떻게 될지,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가 변할지, 전임교수가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자연스럽게 총장은 연임을 하게 되고, 청소 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 속에서 하루하루 고통 받고, 학생들의 생존과 직결된 학습권은 보장받지 못한 채 선박 없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며 지식을 주워담기 바쁠 지 모른다. 슬프게도 이러한 예상은 이미 예전에 실제로 이뤄져 온 일이다. 이 일들이 어떻게 끝날 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관심이 멈추면 진행도 멈추고 관심이 있어도 행동이 없으면 변하지 않는 상황이다. 학생총회, 대자보, 시위를 통해 잠겨 있던 문의 자물쇠를 겨우 부쉈지만 여전히 문을 열리지 않았다. 우리의 무관심은 소통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로 변질되고 결과의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한동에는 지금 이 말이 필요하다.

국제어문학부 08학번 이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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