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인 글씨를 넘어 개성적인 표현과 우연성을 주는 서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 열풍이 일고 있다. 아름다운 서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칼리그라피아(Kalligraphia)에서 유래한 캘리그라피는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를 의미한다. 특히, 최근에는 캘리그라피가 일상 소비재의 디자인에도 활용되면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 추윤호 씨가 자신의 악필로 인해 겪었던 고초를 설명하고 있다. 김운영 사진기자

캘리그라피를 하는 사람들은 타고난 미적 감각의 소유자일까? 캘리그라피를 통해 한글을 널리 퍼뜨리는 한글장수가 되고 싶다는 추윤호(29) 씨는 어린 시절 악필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악필이었던 그는 해외에까지 나가서 ‘한글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악필로 인해 열등감까지 느꼈다는 그는 어떻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캘리그라퍼로서 재탄생할 수 있었을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청년, 추윤호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악필을 극복하고 캘리그라퍼로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직업적으로는 홍보 컨설턴트로 일을 하고 있고, ‘한글장수’라는 작가명으로 캘리그라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재능기부 형식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청년단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어린 시절 추윤호 씨가 궁금해요. 어떤 사람이었나요?
앞장서는 걸 좋아했어요. 뭐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넓고, 좋게 말하면 누구 앞에서 앞장서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6년 동안 반장을 하고, 중학교 때는 전교 부회장, 대학교 때는 기수 회장, 방송사 국장을 했어요. 학군단을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병사로 가기보다는 장교, 그러니까 소대장으로서 병사들을 이끌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어렸을 때 악필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보통 손으로 일기장을 쓰고 받아쓰기를 하잖아요. 근데 글을 보시면서 선생님께서 ‘뭘 이렇게 장난스럽게 썼냐’고 혼내시는 거예요. 그 나이에는 또박또박 쓴다고 할 때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안 썼나 봐요. 한마디로 악필이었죠. 7~8살 되는 나이에 선생님이 그렇게 혼내시니까,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글씨를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죠. 커서 손편지를 쓰는 것도 안 했고, 심지어 편지를 워드로 써서 주곤 했죠. 노트필기도 ‘어차피 못 알아볼 거 왜 보여주냐’는 생각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못했어요.

Q 그런데 어떻게 캘리그라피를 배울 생각을 하셨나요?
2014년 1월 초쯤이었죠. 제가 군에서 장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대구 시내에 있는 교보문고를 돌아다니며 책을 유심히 보다가 우연히 예술 파트를 지나가게 됐어요. 그때 유난히 제게 눈에 띄는 빨간색 책이 있더라고요. 빨간색 책, 저게 뭐지 하면서 봤는데 캘리그라피더라고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악필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그 책을 보자마자 뭔가 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Q 캘리그라피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캘리그라피’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에서 나왔어요. ‘캘리’가 아름다움, ‘그라피’가 서법. 결국에는 아름답게 쓰는 글자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한글 캘리그라피의 매력은 한글을 계속 공부하고 공부할수록, 정말 아름다운 글자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는 ‘영어라는 글자를 써야지 사람이 멋있다. 영어를 멋있게 필기해야 사람이 교양적으로 보인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한글 캘리그라피를 알게 되고 한글이 정말 아름다운 글자라는 것을 알게 됐고,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더 아름답고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Q 캘리그라피를 책으로 혼자서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 힘들지 않으셨나요?
힘들죠. 그래서 제가 독학을 별로 추천을 안 드려요. 순전히 자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글자를 계속 만들어나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시간상으로 남들보다 좀 늦게 깨우칠 수 밖에 없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장교생활 중에 평일엔 최소 4시간, 주말엔 10시간 정도. 그럼 일주일에 거의 40시간 넘게 투자를 했었어요.

한글장수, 세계를 꿈꾸다

Q‘한글미 알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전반기 같은 경우에는 길거리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원하는 문구를 받아서 써주는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그리고 해외에서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캘리그라피를 했었어요. 외국에서 한글이라는 문화가 국가, 국적, 인종을 떠나서 사랑받을 수 있는 문화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그리고 세계 여행을 하다 온 이후로, 즉 후반기에는 주로 협업 쪽으로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학교 학생회에 연계해서 축제 한 부스를 받으면, 우리가 가서 학생들이랑 참여자들에게 기부금을 받고 글씨를 써 주는 거죠. 또 어떤 사회적 기업이 있으면 그 기업에 가서, 문구 적어주는 것과 같은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이후에는 사진과 캘리그라피를 합친 전시회를 구상하고 있어요.

Q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요?
내가 글씨로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껴요. 제가 글씨를 정말 못 썼잖아요. 어렸을 때는 누군가에게 내 글씨를 보여주거나, 내 글자가 정말 예쁘다고 얘기를 못 하는 열등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지금은 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글자를 예쁘고 바꾸고 싶어 하며 배우는 걸 보면 뿌듯한 거죠. 한글미 알리기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제 작품을 보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죠. 2014년 8월부터 시작해서 이제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돈이 안 되더라도 이렇게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Q 캘리그라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캘리그라피 분야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전 세계 사람들이 한글로 된 제품을 사용하게 하는 것이에요. 특히 패션 분야에서요. 이상봉 선생님이 많이 하고 계시지만, 대중화는 되지 않았거든요. 지금 주변 사람들의 옷의 글귀를 봐도 영어잖아요. 저거를 한글로, 전 세계적으로 외국인도 한글로 된 옷을 길거리에서 입고 다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걸 위해서 열정을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도전하라 청춘이여

Q 20대 청년이세요. 청년다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계속 고민해봤을 때, 청년다움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즐길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40대, 50대, 60대라도 청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푸를 청(靑)’이라는 게 나이에 맞는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인생에서 실패를 진짜 많이 했거든요. 제가 대학생 때는 공모전 같은 것도 많이 했고, 책도 냈지만 실패했거든요. 그런데도 계속하는 이유는 그게 어느 순간 도전 자체가 즐겁게 되더라고요. 사실 실패 사례는 엄청 많은데 사람들은 창피해서 얘기를 안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도전력도 떨어지고요. 저도 안정적인 게 좋아지는 순간이 올까 봐 좀 두렵긴 해요.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싶어요. 주변에 보면 무언가 때문에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그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아, 내 꿈은 뭔가 특정한 것을 잡는 게 아니라 크게 잡자’ 해서, 좀 추상적이지만 그렇게 잡은 거예요. 결국에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안될 수밖에 상황이 분명히 생기고 그러면 포기를 해야 할 텐데,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게 살고 싶은 거죠.

Q 좌우명이 있나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중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있어요. 거기서 존 키팅(John Keating) 선생님이 항상 외치는 말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에요. 오로지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시점, 현재를 즐기라는 거죠. 과거는 이미 지나가고 끝난 건데, 즐길 수가 없잖아요. 미래는 아직 오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지금 시점에서는 현재만 생각을 하자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Q 이 글을 읽고 있을 청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실패를 지레 겁먹고 두려워서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아직 실패라는 건 발생하기 전인데 벌써부터 ‘실패하면 사람들에게 창피하겠지’ 생각해서 위축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전을 못 하는 청춘이 안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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