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따끔한 느낌에 황급히 손을 뺀다. 아린 손끝에 커지는 붉은 구멍 하나. 습관대로 필통 대신 주머니에 넣은 샤프에 손이 찔린 것이다. 붉은 구멍은 크게 번져가지만, 커버린 몸집에 비하면 티끌같이 작은 점에 불과하다.
잠깐의 지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구멍을 틀어 막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다시, 찔린 손가락은 찌른 샤프와 동행한다. 찔림으로써 이 잘못된 동행을 고발한 붉은 구멍을 두 눈으로 확인하였건만, 오랜 습관 앞에서 붉은 구멍은 틀어 막힌 채 말이 없다.
걸레를 말려 두던 오석관 1층 계단 밑 창고는 누군가의 쉼터가 되었다. 기존의 관행이 공동체의 시선이 향하는 전부가 될 때, 찔림의 경험, 찔림의 은유는 무력하다. 찔리는 고통에 대한 호소는 잠깐의 지혈처럼 틀어 막히고, 이를 바라보는 이의 양심에도 찔림이 없다. 찔리지 않는 몸과 찔리지 않는 양심으로 살 수 있다는 근사한 믿음을, 언제부턴가, 우리는 습관처럼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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