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는 김미주(14) 양은 꿈에 대한 부모님의 반대와 불확실에 불안해하던 중, 우연히 휴먼 라이브러리(Human Library, 이하 사람도서관)의 휴먼북(Human Book, 이하 사람책)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다영(28) 씨를 발견했다. 김 양은 이 씨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꿈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됐다. 김 양의 부모님도 이 씨와의 만남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비록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씨 개인의 삶과 경험을 전달해주기에는 충분했다. 책으로는 할 수 없었던, 사람책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도서관에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운영 사진기자

예로부터 책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매체였다. 우리는 책을 읽음으로써 저자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며, 웃거나 울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사람도서관을 통해 직접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경험을 공유한다. 사람도서관은 관련 지식을 가진 사람이 독자와 일대일로 만나 정보를 전해주는 도서관으로, 사람도서관에서 독자들은 책이 아닌 사람을 빌린다.  사람책과 독자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지식과 경험,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이다. 새로운 도서관 문화로 등장한 사람도서관, 그 세계로 들어가 보자.

편견과 차별을 넘어, ‘사람도서관’

사람도서관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 덴마크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Ronni Abergel)에 의해서다. 그는 차별과 갈등을 일으키는 사회 편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사람책을 통한 소통’이라는 개념을 창안했고, 사람도서관은 덴마크 청년 비정부기구가 주관하는 뮤직 페스티벌의 부대 행사로 처음 시작됐다. 그리고 이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전 세계 70여 개국으로 퍼져 나간 것이 지금의 사람도서관이다. 그는 사람도서관을 고안하게 된 계기에 대해 “모든 사회에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라며 “하지만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폭력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도서관은 일반 도서관과 거의 똑같이 운영된다. 독자가 방문해 정해진 시간 동안 책을 빌리고, 반납하고 또 다른 책을 빌리고 하는 과정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사람도서관의 책은 사람이기에 독자와 ‘사람책’이 직접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일반 책과의 차이점이다. 물론 사람도서관은 나라별, 지역별로 운영형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일상 대출 외에 일회성, 이벤트 형식으로도 많이 진행된다. 또한, 덴마크 사람도서관의 가이드북에 따르면 사람도서관의 사람책은 우리가 편견과 선입견을 품고 바라보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실례로 사람도서관의 발산지인 덴마크 코펜하겐은 54만 명의 인구 중, 이민자가 2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사람책으로 참여시켜 이민자들과의 일상적 만남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이외에도 자신이 가진 편견 및 고정관념과 맞닥뜨려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고,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사람책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람책과 독자가 서로 질문을 통해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또한, 지역적으로도 활발한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도서관 조직 ▲덴마크 도서관 협회 ▲지역 내 교육센터 ▲학교 등을 중심으로 사람도서관 이벤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의회나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훈련이나 워크숍에 활용되기도 한다.

▲ 부산 지하철 수영역에 위치한 문화공간 ‘쌈.’ 김남균 사진기자

도입 6년째 사람도서관의 현주소

사람도서관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은 2010년 국회도서관이 사람도서관 행사를 개최하면서다. 이후 사람도서관은 ▲노원휴먼라이브러리 ▲달빛마루 도서관과 같은 서울∙수도권 지방자치단체 공립 도서관이나, ▲위즈돔 ▲아울러와 같은 사회적 기업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 사람도서관은 서울 노원구에 있는 노원휴먼라이브러리로, 667명의 사람책과 그들을 필요로 하는 독자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의 경우에는 재능 나눔을 통한 비영리 단체로 운영되고 있다.
 사람책이 되려면 인적 사항과 자기소개, 책 제목과 주제를 간략히 적은 신청서를 도서관에 제출해야 한다. 독자들은 이렇게 등록된 사람책 목록을 보고 도서관을 직접 방문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대출신청을 할 수 있다. 이후 사람도서관은 사람책과 독자를 연결해 준다. 사람책들은 글이 아닌 말로 자신이 지나온 삶과 지혜를 풀어준다. 도서관 서가에 꽂힌 종이책 대신, 사람책으로서 사람도서관을 통해 대출되는 것이다.
 4월 26일, 문화매개공간 ‘쌈’에서는 춤꾼 박정윤(36) 씨와 독자들의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날 행사는 쌈의 주최로 열렸으며, 일반인 스무 명 정도가 독자로 참여했다. 부산예술대학교 김상화 교수의 진행으로 진행된 이날 토크쇼에서는 박 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해서 춤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청춘 시절 방황과 극복과정, 자신이 꿈꾸는 지속 가능한 발레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략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은 박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질문을 던지며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원하는 사람들끼리 저녁을 같이하는 자리를 이어나감으로써 관계를 두텁게 했다. 이날 이야기를 전한 박 씨는 “짧은 시간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라며 “기회가 되어 자주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관객으로 참여한 정성복(33) 씨는 “평소에는 쉽게 접할 수 없던 지역 예술인을 직접 만날 수 있어 뜻깊은 자리였다”라고 말했다.

사람도서관 한계, 극복은 현재 진행형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사람도서관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 달빛마루 도서관 등 현재 국내 대부분의 사람도서관은 비영리로 운영된다. 때문에 좋은 취지와 목적에도, 재정적 제약으로 민간과 개인으로 널리 확산되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아직은 완벽하게 자리 잡지 못해 이벤트성에 그친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일부 도서관에서는 사람책 섭외가 힘들다 보니 중복해 참여하는 경우가 많고, 대출자도 이용해 본 사람이 계속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또한, 본래 사람도서관의 목적인 소외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한 편견 극복보다는 당장 취업을 위한 열람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아직은 사람도서관에 대한 명확한 법적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것도 한계로 지목된다. 사람도서관은 현행 도서관법에서 거론되지 않고 있어, 도서관 소속의 하나의 특별 사업에 그치고 있다.
 한편, 민간과 개인으로 널리 확산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구의 사람도서관 ‘아울러’는 찾아가는 사람도서관을 표방한다. 아울러는 중∙고교를 대상으로 사람도서관을 운영하며 세계여행 경험자, 연애 고수, 특수교사 등 청소년에게 멘토가 될 만한 사람책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박성익(32) 대표는 “유명인이 아닌 주변 일반인인 사람책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내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라며 “사람도서관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여행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고 다른 지역과 소통하는 문화도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람도서관의 긍정적 효과와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도서관에 참여하게 한다. 사람도서관 행사를 진행하는 달빛마루 도서관 강영아(49) 관장은 “종이책은 난도에 따라 독자가 한정되는 데 비해 사람도서관은 이를 허무는 역할을 한다”라며 “책과 독자가 눈을 마주 보며 대화하고 묻고 대답하는 방식이라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또 직접 책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구술로 경험을 전달함으로써 책을 내는 것 이상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위즈돔 관계자 임지우(31) 씨는 “특별한 경력이나 활동이 없어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사람도서관의 장점이다”라며 “다양한 분야의 사람책을 발굴해 지식공유 플랫폼 생태계를 확장시키는 것에 힘쓰겠다”라고 말했다.

혹시 평범한 일상에 젖어 무기력한 삶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다양한 분야의 사람책들이 당신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도서관이 한국에 들어온 지 어느덧 6년, 사람도서관은 평소에 만날 수 없던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사람책들과 독자들이 더욱 늘어나, 우리 모두가 사람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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