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초나라의 장왕은 투초의 난을 평정한 뒤 수고한 신하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고, 애첩 총희로 하여금 왕의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 성대한 음식과 맛있는 술로 잔치가 무르익어가던 즈음, 갑자기 광풍이 불어 연회장의 촛불이 모두 꺼져 버렸다. 연회장은 서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때 갑자기 총희가 비명을 내질렀다. 누군가가 어둠을 틈타 총희의 가슴을 더듬으며 희롱했던 것이다. 총희는 그 자의 갓끈을 잡아 끊어버렸고 왕에게 이를 고하며 자신을 희롱한 자를 가려내 달라고 하였다. 이에 장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갓끈을 끊어버릴 것을 명하였고, 불이 켜진 뒤에도 결국 총희를 희롱한 자를 가려낼 수 없었다.
 3년 뒤 초나라가 진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진나라는 당시 중원의 패자로 싸움이 쉽지 않았지만, 한 장수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분투한 끝에 초나라는 전쟁을 겨우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장수의 놀라운 무예와 용기에 감동한 장왕은 그 장수를 불러 특별히 잘 대우해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전투에 임했냐고 물었고 그 장수는 대답했다. “신은 이미 3년 전에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당시 연회에서 전하의 애첩을 희롱한 자가 저였습니다. 저는 그때 대왕의 온정으로 겨우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유명한 절영지회(絶纓之會)의 고사이다. 리더의 관용이 조직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한동대학교가 비록 기독교 학교이지만, 때때로 그 안에서도 보편적인 윤리관념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뜨악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학우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한동대학교의 리더십이 얼마나 관용적으로 조직원들을 품어왔는지 느낄 수 있다.
 절영지회의 고사에서 초장왕의 선택이 모든 이에게 동의를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애첩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왕은 어쩌면 애첩을 정말로 사랑하지는 않았을 수도, 아니 어쩌면 자신의 부하 중에 그런 사람이 나왔다는 것을 자신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으로 여겨 부끄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당시 시대상과, 남자보다 철저하게 아래에 있는 계급으로 여겨졌던 여자의 권위, 그리고 역사 속에서 평가 받는 장왕의 모습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 선택은 부하를 끌어안고자 했던 아름다운 리더십의 전형으로 보였을 테다.
 헌데 한동대학교에는 총희를 희롱했던 장수의 고백과 같은 고백은, 또 그 장수의 은혜 갚음이나 눈물과 같은 모습은 어떤 형태로도 찾아보기 힘드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이런. 갓끈을 끊고, 품 안에 품고 있는 그 은혜를 인간이 잊다니. 오수의 개에 등장하는 개나, 은혜 갚은 까치의 주인공 같은 동물들도 은혜를 갚을지언데, 인간이 정말 그런 은혜를 잊었단 말인고?
 하긴 그 누가 아랴. 그 갓끈을 끊게 한 행동 뒤에 다른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어쩌면 한동이 애초에 관용을 베푼 적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닐까. 돌이켜보면 한동이 품고 내세우는 것은 언제나 뛰어난 이들의 뛰어난 면모였을 뿐이다. 오호 통재라, 한동의 장왕이 애첩도 잃고 장수도 잃을까 두렵구나.

언론정보문화학부 08학번 박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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