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매몰되어 나의 정성어린 글과 ‘존재감’이 며칠사이에 사라져 버리던 때에, 혜성처럼 등장한 싸이월드 미니홈피 서비스. 네티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공간 뿐 아니라 사진, 음악 등을 제공해줌으로써 ‘웹 정체성(web identity)’을 갖게 해주고, 그 대가로 하루 평균 1억 8천여 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한 1000만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가입자 수는 ‘싸이질’, ‘싸이홀릭’. ‘싸이데이’ 등의 각종 신조어를 낳았으며 월간 페이지뷰는 다음 카페를 제치고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싸이월드를 또 하나의 친목 사이트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20대 대학생들의 온라인 필수품이 되어 버린 미니 홈페이지 덕분에 우리는 집안에서 간편하게 자기를 표현하며, 잊고있던 사람들을 만나고, 옛 추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무리 편리하고 유익한 것이라 할 지라도 지나친 맹신과 무비판적인 수용은 금물. 최근 들어 싸이월드의 여러 가지 부작용과 역기능이 학내와 사내 등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대체 어떠한 요소들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미니 홈페이지라는 특성상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과장된 자기 표현과 피상적인 인간관계의 문제이다. 시작부터 주변 사람들에 휩쓸려 대응적인 동기로 가입하게 된 상당수 가입자들은(설문조사 참조) 자신의 미니홈피에 ‘원만한 대인관계’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친밀함의 표시로 모든 지인들과 일촌관계를 맺고 △그날그날의 방문자와 방명록 글 개수에 신경을 쓰며 △잦은 이벤트를 만들어 계속적인 방문을 유도하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홈페이지를 단장하는 등의 노력들은 대부분 자신의 홈페이지를 보다 인기 있는 홈페이지로 만들어보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혹자는 이 때문에 싸이월드를 ‘가식월드’라 부르기도 하는데 김충만 학우(국제어문 03)도 “사이버 상에서는 친한 관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오프라인 상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미니 홈페이지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시도 때도 없는 지나친 이용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의 대기업들은 싸이월드를 전면 혹은 부분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는 학생 측과의 마찰을 감수하면서도 지난 7월 중순부터 교내 공공 pc의 싸이월드 접속을 차단시켰다. 지금까지 과다 이용을 이유로 특정 사이트를 차단해 본 적이 없다는 고려대 전산 운영부 측의 말을 들어보면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학교도 그 예외는 아니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학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학습과 무관하게 ‘싸이질’을 하는 모습을 학술 정보관에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싸이월드는 개인 중심적인 인간들을 양산한다. 이전까지 공동체 커뮤니티에서 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대부분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리고 기록을 보존하고 싶은 생각에 미니 홈페이지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단지 방명록에 몇 줄 적어주는 형식적인 만남이 일상화 되어버린 우리의 어그러진 미니 홈페이지 문화는 안타깝게도 건전한 공동체 문화를 대신할 만족을 주지 못한다. 싸이월드에 투자한 시간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비용으로 ‘공동체를 향한 애정’과 ‘함께하는 시간’을 지불했기 때문에 네티즌들은 결과적으로 인간관계에 불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OECD국가들 가운데 4위까지 치솟은 우리 나라의 자살률이 증명해주듯 많은 사람들은 정보화 사회로 진입할수록 외로움을 느낀다. 무료하게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진심 없는 마음만을 주고 받는, 늘어나는 메마른 영혼의 소유자들. 혹시 우리들의 모습도 이렇지는 않을까. 그늘진 싸이월드의 이면를 미처 보지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소위 말하는 ‘싸이 폐인’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닐까. 새로운 학기의 시작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며 공허하지 않은 주님 안에서의 교제를 회복할 때인 것 같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지인수 기자 ultra19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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