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drum, Life-straw. Play-pump... 앞의 단어를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다면 적정 기술에 대해 한번이라도 들어본 독자일 것이다. 혹 앞의 단어를 처음 본 독자라 하더라도 앞으로 적정 기술이라는 단어를 접할 기회가 많을 텐데, 국내에서 적정 기술에 대한 관심이 점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작년에만 적정 기술과 관련된 서적이 4권이나 출간되었고 적정기술과 관련된 대회나 포럼이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나 주목 받는 적정 기술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재밌는 사실은 적정 기술의 개념을 처음 주창한 사람이 공학자가 아니라 ‘슈마허’라는 경제학자이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선진국의 대규모 경제 체제에서 발생하는 인간 소외와 비인간성을 지적했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인간 소외가 발생하지 않는 중간 규모의 경제 체제를 제안했다. 여기서 ‘중간 기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중간 기술이란 중간 규모의 경제 체제에서 사용하는 기술이라는 의미이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면, 대규모기술로는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대규모의 발전 시설을 예로 들 수 있다. 국가와 같은 대단위의 경제 체계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대규모의 발전소가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방사능 물질 처리라는 환경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발전소 주변사람들만 원자력 발전소로 인한 피해를 입는 문제 또한 발생하는데, 국민 대다수가 전기를 사용해야 하고 산업에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사람의 피해를 정당화하는 인간 소외가 발생한다.
슈마허의 이론에 따르면 경제체제를 더 작은 지역 단위로 자르고 각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친 환경적, 지역적 발전소를 통해 중간 단위의 경제체계에 속한 개개인이 직접 문제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면 환경 문제와 인간 소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이 후 슈마허는 중간 기술이라는 명칭을 첨단 기술과 비교되는 것을 피하고 사회 정치적인 의미를 포함시키기 위해서 ‘적정 기술’로 바꾼다. 슈마허는 ‘적정 기술‘을 통해 개개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기를 원했다.
70년대 이후 ‘적정 기술’의 개념은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을 유지하지만 적용 대상이나 적용 분야에 있어서는 정의하는 사람마다 달라졌다. 현재, 일반적으로 ‘적정 기술’의 적용 대상은 아프리카와 같은 개발 도상국의 국민들이고, 적용 분야는 식수 조달, 농사 기구, 음식 저장고 등 주로는 식문제와 관련 되어 있다. 최근에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지식 정보 분야 격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기술의 적용 분야가 지식 정보 산업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현재 ‘적정 기술’을 정의할 때 ‘적정 기술’의 의미를 단순한 하나의 기술적 분류가 아니라 기술이 사회에 가진 의미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철학 내지 세계관으로 확장시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적정 기술’을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로 정의 한다. 정의에 따르면 ‘적정 기술’은 현지인의 환경에 맞게 저렴할 뿐 아니라 성능도 뛰어난 기술이고 결과적으로 이 기술이 현지인들의 경제적 자립과 삶의 질의 향상을 가지고 온다. 이러한 ‘적정 기술’의 정의가 중요한 이유는 정의가 가진 전제가 기술 결정론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기술 결정론적인 관점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을 회피하게 될 수도 있다.
‘적정 기술’에서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지역적 특성이다.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현지 환경의 제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정 기술’에서는 해당 지역의 도로 상황이 엉망이면 외부에서 물품을 조달하지 않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만으로 제품을 구한다. 또한 지역적 특성은 현지인들의 낮은 경제 수준을 고려하여 제품의 단가를 최소화하는 것도 포함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되는 상황은 현지의 환경적 제약이 사회 구조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적정 기술’이 잘못된 시스템 속을 유지시키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발표된 ‘적정 기술’에 관련한 몇몇 논문들에서 ‘적정 기술’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보다는 단기적인 적용에 머무르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지의 사회, 정치적 부패가 그들의 낮은 경제 수준을 만든 다면 그들에게 저렴한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다.
현재 만들어진 여러 ‘적정 기술’들이 현지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술들이 현지인들의 삶의 개선을 넘어서 사회 시스템 또한 개선을 가지고 올 것이라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오히려 중요한 문제를 미루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사회적인 문제로 인해 식수가 오염되는 상황에서는 현지인들에게 Life-straw를 주는 것이 진정한 해결방법이 아니라, 식수가 오염되는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 해결방안이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의 삶의 질은 근본적으로 변화 시키고자 한다면, 우선은 그들이 처한 문제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인 문제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처음에 슈마허가 제안한 ‘적정 기술’이 사회에 대한 고려가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적정 기술 또한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적정 기술‘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앞으로는 ’적정 기술‘이 본래적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김동호 (전산전자 14)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