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째 호다. 많은 말이 생략됐다. 실은 떠올리려 해도 어렵다. 모든 힘든 일은 빠르게 흘러갔고, 잊혔다. 그런데도 기사를 냈다는 뿌듯함보다는 안타까움, 부끄러움, 피로감만이 남는다. 이번 호에서만큼은 다르고 싶었다. 기사 아이템 찾기, 취재, 기사 쓰기로 이어지는 과정들에서 나는 평온을 느끼길 바랐다.
아이템에서부터 욕심을 드러냈다. 나는 비기독교인임에도 다른 기독교인 친구들이 위로를 받곤 하는 새벽기도를 가져왔다. 또, 이번에 함께 담당한 소기획도 같은 이유로 선정했다. 방돌이들도 잠들어 있는 늦은 밤, 나를 웃으며 반겨주시는 아주머니와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모두 지친 나를 달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나보다는 독자를 항상 생각해야 하는 기자로서의 본분을 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그런 건 없었나. 어쨌든 아이템 기획서는 통과됐다.
취재는 즐거웠다. 새벽 5시에 일어나지 못해, 밤을 지새우며 새벽기도에 가면서도 그 시간에는 행복감을 느꼈다. 새벽기도에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재밌었고, 한창 햇님이 꼼지락거릴 시간에 햇님의 잠꼬대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잠시 취재를 제쳐놓고 일출을 보러 활주로와 칠포에 가기도 했다. 새벽기도의 낯선 분위기도 신기했다.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이 모였고, 제각기 나름의 방법으로 하나님과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첫 취재 날,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무섭기도 했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취재가 계속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1시간 넘게 기도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주머니와의 인터뷰도 예상대로 유쾌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긴 인터뷰에서도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편하게 대해주셨다. 아주머니의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주머니께서 가지고 계신 감사하는 마음과 학생들과 동료들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아주머니 자신에 대해 말씀해 주실 때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한 우리네 엄마가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긍정적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으시다고 했다. 주어진 만큼 고 나름대로 살고 계신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마음가짐과 삶 속에서 내가 바라던 평온을 엿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내게 “자기네 같이 젊었을 때는 욕심을 가져야지. 할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아주머니는 애정 어린 꾸중을 하셨다.
밤을 새워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고 새벽기도 기사를 써낸 새벽 5시, 정귀옥 아주머님을 다시 뵈러 갔다. 아주머니께서는 인터뷰 날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반겨주셨다. 커피 한 잔 괜찮겠냐며 따라주셨다. 아주머니는 종이컵 가득 채워진 커피와 함께 가슴 따뜻한 위로의 말들을 건네어 주셨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새벽기도에 찾아갔다. 취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가는 이유에서였다. 오늘도 별관 창틈 사이로 보이는 일출 진 하늘은 아름다웠고, 불이 꺼진 채 혼자 있는 시간에는 평온을 느꼈다. 예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후 채플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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