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대학 이외의 다양한 교육기관들에서 회화를 뒤늦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수강생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수련을 마치자마자 미술현장에 작품을 직접 발표하거나 미술 대학원에 진학하고 있다. 나는 이들의 자신감이 오늘날 미술현장에서 정당화되는 구체적 징후를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사에서 이해되는 표현주의에서 찾는다. 특히 표현주의를 가능케 하는 구체적 매체가 ‘칠’인 것에 주목하여 1910년대에 활동한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이룩된 칠의 속성과 시대적 역할을 돌아봄으로써 표현주의에 대한 우리나라 미술현장의 오해를 지적하고자 한다.

1980년대의 한국미술에 뚜렷한 한 가지 특징을 구성했던 민중미술이 1994년 ‘민중미술 15년전’이란 제목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되었을 때 이 전시회에 대해 “민중미술은 제도로부터 당당한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그것의 장례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제도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채 저항하는 아방가르드의 모습으로 민중미술이 이해됨을 말한다. 민중미술가들은 1960∼'70년대를 주도한 한국현대미술의 주도적 미학에 대항하고 삶의 진실성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이 거부한 것은 아름답다고 통념적으로 간주되는 대상의 재현에 의존한 미술과 시각적 순수성을 실현한다고 믿는 추상미술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소시민과 민초들의 삶을 매끈하고 평평한 단색조의 고상함이 아닌 투박하고 거친 칠로 자신의 캔버스를 매웠다. 기존 제도에 대한 이들의 구체적 저항 방법은 칠을 통해서이었다.

1950년대 말에는 한국전쟁 중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한 세대들에 의해 뜨거운 추상운동이 현대미술협회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전쟁을 통해 인위적인 모든 작위의 허망함을 주목하고 오직 개인의 혼돈스런 내면과 본능의 소리를 생생하게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과 10년 앞서서 이미 유럽에서 2차대전의 경험을 혈흔, 붕대의 질감, 살점과 같은 물리적 속성을 유발하는 광폭한 칠을 통해 미술가의 감정을 표현했던 앵포르멜 운동에 공감하고 스스로 한국의 앵포르멜 운동을 실천하고자 했다.

1930년대는 1915년 일본에서 유화를 배우고 돌아온 고희동을 이은 세대들이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이다. 이 때 제작된 대부분의 회화들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서양회화의 사조와 평행하고 있다. 구본웅이 대상을 화면에 간략하고 단순하게 도입하면서 그 표면을 점액질이 흘러내리는 칠의 속성으로 식민지인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이인성, 오지호의 인상주의적 화면과 이중섭의 상징주의적 회화 등은 이 시기를 대표한다. 이들은 당시 한국의 토속적 표현을 목적으로 푸른 하늘과 민둥산의 붉은 흙을 짙은 원색으로 두텁게 칠했다.

1930년대 오지호의 “남양집”, 이중섭의 “소” 그리고 이인성의 인물화들은 분명 한국적인 것을 생각했을 때 합당해 보이는 시각적 믿음이 현재에 까지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그 각각의 이미지를 이루는 칠은 한국의 토담, 역동하는 토종 가축의 근육, 그리고 다소곳하고 풋풋한 한국의 처녀를 재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룩한 칠은 일본의 현대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곁눈질의 결과이다. 이중섭과 이인성이 고국에 있으면서 일본의 동무로부터 전해 받는 서신을 천연색으로 인쇄된 엽서로 받으려고 했다. 그 엽서에는 해마다 열린 일본의 주요 전시회의 수상작이 실렸기 때문이다. 이들의 칠이 의존하고 있는 또 다른 토속적 특성은 당시 일본이 한국을 일본을 본토로 하는 지방으로 간주하고 향토색 장려운동을 했다. 이들이 채용한 표현주의적 칠은 결국 우리나라 양화 도입기에 이미지 정보와 이념을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전해 준다.

한국의 현대미술사에서 표현주의적 칠은 서술적 연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앞에서 살폈다. 항일투쟁기의 칠은 한국적 정서라는 문학적 연상을 위한 것으로, 그리고 1950년대 말 한국 최초 추상운동인 앵포르멜은 당시 그 운동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의 민중미술은 분명한 각성을 시각적으로 이룩하지만 구상미술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봤다. 이들 각각의 시기에 적용된 칠은 한국인의 시각으로 지속적으로 복구되고 재해석되어야 할 대상이고 그만큼 당대를 시각적으로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들 시기를 한꺼번에 공유하는 세대들이 미술현장에 함께 하고 이들간의 모습을 지켜본 눈치 빠른 문화센터의 수강생과 그들의 환경이 결국 시각적 훈련 없이 칠만으로 현대미술의 현장에 도전하는 배포를 가능케 한 것으로 보인다.

이희영 (미술평론가, 한동대학교 기초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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