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게 되면 첫 문장에서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제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계급의 명칭만 바뀌었을 뿐 결국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로 대립하는 세계 그리고 투쟁들로 역사는 쓰여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의 여성과 남성의 대립을 바라보자.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여성은 자신들이 억압받는 자라 생각하여 남성들에게 투쟁한다. 그 결과 ‘메갈리아’ 사이트를 운영하며 남성들의 혐오에 맞선다. 남성의 입장에 서보자. 전문가들은 여성의 지위 상승으로 인해 남성의 설 자리가 위험해짐에 따라 여성 혐오가 발생한다고 한다. 남성도 자신들이 억압당하고 있다 느끼고 그것에 대한 위협으로 혐오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의 많은 계급투쟁이 있었다. 계급투쟁 속에서 피지배 계층들이 원하는 결과는 한가지이다. 평등하게 사는 것, 차별받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남녀 사이에 평등한 것이란 무엇인가? 여성도 남성처럼 똑같이 군대 가는 것? 데이트 비용 반반씩 내는 것? 모든 사회생활에 있어서 남녀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조금이라도 이러한 생각을 해보고 이성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인가? 답은 여러분의 생각에 맡기겠다.
나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근거 없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나는 여성 투쟁 운동을 혐오하지 않는다. 현재의 역사는 과거의 다양한 투쟁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역사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투쟁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갈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상에서 행해지는 여성 혐오 글들을 보면 참 혐오스럽다.
온라인상의 익명성은 글에 가벼움을 더해 주었다. 나쁘게 말하면 신중함을 상실하였다. 내가 어떤 글을 쓰든지 뭐라 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일단 싸지르고 보는 것이다. 온라인상의 여성혐오 글들은 투쟁이라기보다는 앙탈에 가까운 것 같다.
이번 기사를 쓰면서 남성연대의 대표를 맡으셨었고, 현재는 양성평등연대의 대표로 있으신 김동근 씨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한때 남성연대의 대표로도 계셨던 분이기 때문에 남성편협적인 얘기를 들을 줄 알았다. 물론 그가 주장하는 정책들은 남성의 인권 개선과 관련된 것들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가 하는 것은 혐오라기보다는 투쟁에 가까웠다. 그는 남성들의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한 남성들의 잘못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시인하였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모두 부인하지 않고 변질된 페미니스트들이 주장에 대해서만 부인하였다. 남녀 차별 철폐운동, 여성부 폐지 운동과 같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나름의 소신과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국어사전의 따르면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함’, 투쟁은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으로 정의한다. 2015년에는 여성 혐오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었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혐오를 재생산하는 장치가 아닌 더 나은 혐오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이 되어, 남녀의 갈등이 더 나은 사회 통합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회문화부 유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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